용기와 희망을 갖자 호남대학교 교수 장 현

차가운 겨울이다. 요즘 힘들어 가는 경제상황 속에서 전국적으로 실직공포와 아우성으로 더 한층 추운 겨울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오히려 겨울낭만을 즐기지만 돈없는 사람들이야 겨울이 저승사자 같아 오금을 펼 수가 없다. 여기다 정치분쟁, 금융불안, 노사분규가 하루도 잠잠하지 않고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농가 부채 때문에 못살겠다며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하는 농민들의 항거는 눈물겨운 바 있다. 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업종별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 실사지수(BSI) 동향을 조사한 결과, 내수와 수출전망을 포함하여 기업인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98년 7월 이후 30개월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맞이하는 새해에 즈음하여 내 주위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현재 농가부채는 총25조6천억원으로 농가당 1천8백50만원에 해당하며 당해연도 농가소득의 83%에 달한다. 한마디로 1년 농사 죽어라고 지어봤자 빚잔치일 뿐이고 자녀들 학자금에 내년도 영농준비에 또다시 빚을 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농가 차입금 금리를 현재의 11%대에서 5∼6%대로 대폭 낮추고 차입금 상환도 5년이상 장기 분할 상환이 가능하도록해 농민들의 부채 부담을 경감해 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가 부채 전액을 5년 거치, 10년 유예, 10년 분할 상환토록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25년을 분할 상환하겠다는 얘기여서 곤란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가 만일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이로 인한 재정 부담이 총 45조원이 늘기 때문에 수용이 어렵다는 것이 정부측 주장이다.

순박하고 평화롭던 농촌이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 과거 노동집약적이던 농업이 70∼80년대 공업화와 산업화 바람으로 이농현상이 심화되고 기계화와 자본집약적 농업으로 전환된데 따른 영농비용 증가를 들 수 있다.

둘째, WTO체제에 따른 수입농산물 증가와 엎친데 덮친격의 IMF 환란을 들 수 있다. 기계화 첨단과학 영농은 엄청난 「돈」이 필요한 반면 농산물 가격은 늘 제자리를 맴돌고 수입농산물 증가는 우리 농산물 판로를 막고 IMF는 소비위축을 불러 결국 농산물 가격폭락을 몰고와 생산원가는 고사하고 한여름 땀방울 값도 못 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셋째, 이같은 농업 경영수지 악화는 연대보증으로 온동네가 거미줄 얽히듯 이어져 농촌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러니 농민들은 빚을 질 수밖에 없게 되었고, 급기야 자살에 이은 농민시위가 벌어지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농민들은 농촌붕괴의 원인이 정부의 잘못된「농정시책」에서 왔으며 현재 정부가 마련한 대책 또한 「전시 행정적 미봉책」이라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농가부채가 정치권이나 금융권처럼 국민의 혈세를 부정하게 사용하다 발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나 금융권에 40조원의 공적자금(공적자금은 정부가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기채한 돈으로 정부가 지급 보증한 것으로 만일 공적자금의 회수가 불가능하면 꼼짝없이 국민이 갚아야 한다.

현재 공적자금의 총조정액이 기존의 1백9조여원에다 신규 50조여원이 합해져 약 1백60조원으로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돈은 4백만원이고 4인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1가구당 1천6백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계산이다)을 쏟아 부었듯이 국가적 차원에서 농촌이「회생」될 때까지 기간을 연장하고 부담을 줄여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측의 재정 부담 주장에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생존권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현재까지 회수 불능의 공적자금만 60조원에 이르러 국민 한 사람당 부채는 1백20만원을 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부담의 증가를 이유로 농민들을 설득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진솔하게 인정해야 한다. 흔히 "도시를 꽃, 농촌은 그 뿌리"라고 한다. 꽃이 싱싱하게 잘 피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뿌리가 튼튼해야 하듯이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 뿌리인 농촌을 살려야 한다.

농촌을 살리는 정부의 정책 촉구와 더불어 우리 내부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일찍이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1950년대 어느 날 시인 서정주는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 ~중략~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라고 읊조렸다. 보리 한 톨이 귀하게 여겨지던 그 가난한 시절에도 사람들은 따뜻한 가슴과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내일을 기약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보다는 훨씬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오히려 더욱 혼란스럽고 각박해지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거센 풍랑은 국경을 넘어 우리 사회를 온통 극심한 불평등과 극단적 이기주의 풍조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 했듯이 열 사람이 한 사람 살리기는 쉬운 법이다. 세상에 뭐가 서러우니 뭐가 서러우니 해도 배고픈 것보다 더 서러운게 어디 있는가. 따지고 보면 다 형제 자매다. 박애니 인류애니 하는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더라도 인정(人情) 하나로 우리는 이 겨울을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게 날 수 있다.

미국인들은 불우이웃을 위해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6백41달러를 내놓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2백분의 1인 6달러도 채 안 내놓는다니 이러고도 「인정의 나라」니 「예절의 나라」니 할 수 있는가. 사회가 어렵고 힘들수록 정다운 눈길, 따뜻한 미소, 훈훈한 인정으로 체감 온도를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선진 복지사회는 나눔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춥고 배가 고플때 일수록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려는 따뜻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뜻 있는 사람들은 우리사회가 보다 발전하고 성숙하기 위한 조건들을 열거한다. 인간 사회의 기본 원리와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거나 소속집단이 다르더라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서로 자기 몫만 챙기려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는 역지사지 (易地思之)의 자세가 절실하다.

정부의 정책이 바로 서고 국민의 정신과 태도가 올곧을 때만이 오늘의 좌절과 낙망에서 벗어나 영광된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맹추위는 봄이 멀지 않았다는 증표다. 우리에게는 분명 꿈과 희망이 있기에 용기와 희망의 대열에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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