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탄생 100주년 기념 시비 건립을 축하하며-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무장폭도로 낙인찍힌 선량한 시민들이 민주열사가 되고 민주 유공자가 되기 위해 20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고, 2000년 그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에 이은 8·15 남북이산가족상봉 또한 50년의 세월이 흘러가야 했다. 월북 시조 시인이라는 회색 빛 멍에 속에 잃어버렸던 조운(曺雲) 시인의 시를 되찾고, 그의 시비(詩碑)를 영광의 한복판에 세울 수 있기까지도 50년의 세월이 피눈물나는 고통과 갈등 속에서 흘러가야 했다.

영광의 한복판은 바로 우리들 영광인의 가슴 한복판이다. 같은 형제, 같은 혈육끼리 죽창과 총칼로 죽이고 지금도 국토와 겨레가 남북으로 두동강 나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여,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길래 그리도 미워하고 싸우고 피투성이가 되었단 말인가. 6·15 남북공동선언을 일구어 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7천만 민족과 전 세계를 눈물과 감동으로 적시게 한 불세출의 마술사라고 나는 시를 써서 발표한 바 있다.

우리들이 함께 흘렸던 뜨거운 눈물은 반세기동안 펼쳐진 살육과 대결과 미움의 철조망을 녹이고 통일을 부르는 절규요, 한 맺힌 몸부림이었다.

조운 시인! 그는 우리 영광이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요, 민족 선각자이다. 좌다 우다 하는 이념은 민족주의의 용광로에 녹여 버려야 할 일시적인 상황논리요, 뜨거운 민족애의 활화산에 불태워 버려야할 시대적인 산물이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자주적으로 민주선진 통일국가, 생산적 복지가 실현된 지식정보 강국이 되어 세계무대에서 인류 공통의 문제해결에 주도적 주체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지난 7월, 찌는 듯한 불볕더위에도 불구하고 조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영광의 뜻 있는 각계각층 인사들은 작은 차이(小異)를 극복해 가며 대승적으로 큰 단결(大同)을 이루어 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문학세미나, 시 낭송회, 시화전, 백일장, 문학기행, 조운시집 발간, 기념식 등을 성대히 치렀었다. 다만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시비 제막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은 우리 민족과 우리 영광사회의 안으로 응어리진 아픔과 복합적인 갈등이 표출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모름지기 이번에 다시 열리게 된 조운 시비제막식은 역사의 변증법적 합법칙(正反合)에 의해 시너지 효과를 얻어 생성된 한층 성숙된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합심 동참하는 한편, 군민축제가 된 것은 바로 우리 영광문학과 영광군민 모두의 승리요, 나아가 문학사적으로 통일문학과 민족문학을 향한 한국문학의 하나의 큰 진전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예로부터 문향으로 빛나는 옥당골- 우리 영광은 새 천년 새봄에 기존의 칠산문학회를 모태로 하여 두개의 문학단체-한국문인협회 영광지부와 영광문인협회가 창립되어 활발한 창작과 문학활동을 펼침으로써 문학의 활성화와 문예부흥의 단초를 열어젖힌 바 있다. 이제 조운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의 성공적 수행과 함께 조운 시비가 제막됨으로서 우리 영광문학은 바야흐로 문예부흥기에 정초를 놓는 한편, 문예부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작이라는 자각과 결심으로 더욱 분발 노력하고 협력하여 문예부흥의 꽃을 피우는 것이 우리 영광문인들과 군민 앞에 놓여 있는 화두라고 본다. 그 동안 시비 건립을 위하여, 그리고 여러 기념사업을 위하여 동분서주 헌신적으로 애쓰신 기념사업회 임직원과 광주 전남민족문학작가회의 김준태 회장 등 도와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영광군민 여러분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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