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세차를 맡기고서 초중학교 시절 코끝 시린 북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집 마당처럼 헤집고 다니던 추억 어린 길들을 한동안 걸어 보았다. 그 길 위로 많은 것이 변하고 또 변해왔음을 잘 알고 있지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차분하게 지난 일을 회상하고 반성하는 여유가 깃들어 오는 것은 참말로 오래간만이 아닐 수 없었다.

거리에는 의지할 곳 없는 시린 가슴으로 사는 사람마냥 차가운 거리에 처연하게 나뭇잎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 그렇지, 이렇게 찬바람이 옷깃을 타고 볼을 스칠 때면 나는 어김없이 소외된 이웃들을 마치 계절병처럼 떠올리곤 한다.

연말이면 유독 빈번하게 고개를 내미는 구휼의 손길, 그 위로 건네는 최소한의 경제적 기여로 일년동안 남이야 어떻든 별탈 없이 평안을 누리며 살아 온 얄팍한 양심에 일말의 면죄부가 되어 주던 부끄러운 계절, 나는 다시 그 겨울의 문턱에 섰다.

우리 영광읍만해도 정신,지체 장애인이 700여명에 이르며 영광군의 소년소녀가장이 78명, 무의탁 독거노인이 111명이나 된다.

그들은 철새처럼 지나가는 선심성 자선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 역시 찬바람과 함께 등장해 기름만 넣으면 순간적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겨울 난로가 결코 아니다. 짐짓 친구나 형제가 되어 주고, 때로는 자식이 되어주고, 부모가 되어주는 친밀한 상호작용에 목말라 한다.

수해 전 평생 독신으로 살며 모은 전 재산 55억원을 대학발전기금으로 내놓은 부산의 곰탕집 할머니는 독방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가난 때문에 학교문턱도 가지 못하고 미군부대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평생모은 50억원으로 학교를 설립한 인천의 어느 잡역부 할아버지도 병실에서 홀연히 목숨을 거뒀다. 도움받아야 할 분들이 스스로를 일으키고, 나아가 사회발전에 이바지를 한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 노인들의 삶은 너무도 숭고하고 아이러니하다. 이 얘기는 우리에게 부귀영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인가, 궁극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리없이 가슴에 와닿게 한다.

그들은 실로 베푼다는 것이 두 개의 사과가 있어 하나를 내어주는 일이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사과지만 반을 쪼개 나누는 사랑임을 몸소 가르치고 떠난 이 시대의 예수이다.

무엇보다 그 내용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중요하지 않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고, 따스한 정으로 마음을 나누며 꾸준히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그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일 듯 싶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