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삼권분립의 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국회의장의 제안을 했으면 무겁게 받아들여야지 ‘어느집 개가 짖느냐’는 반응을 보여서야…”

 


두주를 불사하는 선배가 있었다. 적잖은 방을 맥주병으로 꽉 채울 정도로 오랜 시간 많이도 마셔댄다. 정작 계산 할 때가 되면 잠이 들어 버린다. 재력도 있고 상당한 영향력도 있는 한 선배는 자기가 잘 아는 술집으로 사람들을 불러내 고급 양주를 마시고는 매번 상대방에게 술값을 씌우는 바람에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계산서 때문에 추해지지만 않았다면 좋은 평판을 받을 분들이었다.


 


 자기 속셈에 맞지 않는 계산서는 누구에게나 반갑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계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요즘 정치권이 계산서 빼기에 상당히 머리를 쓰는 것 같다. ‘개헌’ 이라는 화두를 놓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상당히 복잡한 계산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의 계산서들만 뽑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17대 국회 말 당시 여당이던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8대 국회들어서면 개헌 논의를 하기로 약속했다. 18대 국회 들어서 헌법 연구회가 만들어지고 각당에서 공동대표도 세웠다. 토론회도 갖고 제법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정작 국회나 정당의 틀 속에서는 개헌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개헌 논의는 다시 부상했다.


 


 권력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현행 헌법으로 인해 ‘불행한 대통령들’ 이 탄생 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도 권력 집중의 폐해에 따른 개헌의 필요성이 어느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대도 각 정파는 개헌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모두 나름대로 계산서를 뽑아 보니 이로울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 일 것이다.


 


 개헌절 61주년을 맞아 김형오 국회의장이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 개헌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현행 헌법은 급변하는 시대조류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개헌을 공론화 하자는 것이다. 김 의장은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 헌법, 국가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선진 헌법, 국회가 중심이 되는 국민 통합 헌법으로의 개헌 필요성을 강조 했다. 17대 국회 후반에 모든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18대 국회 전반기에 논의 할 것에 동의 했다는 개헌 공론화의 당위성도 부각 시켰다.


 


 김 의장의 개헌 공론화 제안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한마디로 싸늘 하다. 박희태 한라당 대표는 “개헌이 필요한 지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한 일이 없다. 있는 헌법이라도 성실히 지켰으면 한다” 고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도 “검토는 하겠지만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일축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국회의장의 중립성 회복이 급선무라며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 청와대 측도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며 마땅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 해도 그렇지 어엿이 삼권분립의 헌법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장이 제헌절에 개헌에 관한 제안을 했으면 무겁게 받아들여 져야지 ‘어느 집 개가 짖느냐’는 이같은 반응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우리 국회를 국회의원 스스로가 가볍게 보지 않고서야 의장의 제안을 ‘개소리’ 정도로 들어 넘기겠는가. 국회를 ‘대접’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푸대접하는 것과 같다. 국회의원인 자기들을 스스로 무시한 것이다.


 


 이같은 슬픈 현상도 모두 ‘그놈의’ 계산서 때문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개헌이 공론화되면 모든 이슈가 개헌 논의에 묻혀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놓고 대치하고 있는 마당에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정국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계산서를 뺐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반 이상이 헌법연구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고 국민의 60%이상이 찬성하고 있다. 개헌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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