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통일 20년을 자축하는 독일을 보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갑작스러운 남북통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통일을 향한 노력을 그쳐서는 안된다”


 


 1990년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졌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온 분단 독일의 통일은 충격이었다. 이제 지구상에 분단국은 한국뿐이라는 슬픈 현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인해 우리도 머잖아 통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흥분되기도 했다. 벌써 20년이다.


 


 통일 20년을 맞은 독일에서는 부란덴부르그의 장벽이 있던 자리에 도미노를 세워놓고 무너뜨리는 행사가 세계적 관심속에 열렸다. 물론 독일의 통일을 자축하는 행사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이 행사가 서구 사회의 관심을 끈 것은 독일의 통일이라는 사실 보다 공산주의 붕괴의 신호탄 이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이래 분열 양상을 보이던 독일은 1871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 독일제국을 이루었다. 2차대전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동· 서로 다시 분단된 독일의 통일은 세계사의 큰 획을 긋는 ‘사건’ 이었다. 구 소련 중심의 공산권 붕괴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폴란드, 헝가리, 체코등 동구라파 나라들이 소련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았고 소비에트 연방도 붕괴됐다.


 


 공산권의 붕괴 원인은 경제파탄이었다. 당시 서독에는 미군 1백만명, 동독에는 소련군 60만명이 주둔, 동· 서독을 갈라 놓았는데 소련의 경제파탄으로 군대가 철수했다. 경제파탄에 군대마저 없어져버린 동독으로서는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면적과 인구가 3배고 경제력은 10배이상인 서독으로 동독이 흡수 통합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라 할 수 있다. 체제를 유지할 군대와 먹고 살 것이 없는 상황 자체가 ‘분단’ 을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통일 20년을 자축하는 독일을 보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2차대전으로 분단이 고착된 것은 독일과 마찬가지인데 남· 북은 각각 대규모 군대를 갖추고 60년간 끊임없이 싸우고만 있다.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사건’ ‘도끼만행 사건’ ‘1․ 2차 서해 교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임진강 수공’ 등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국제법상 ‘휴전’ 상태일 뿐 사실상 ‘내전’ 상태로 볼 수 밖에 없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과 포옹하고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설, 인도적 지원등 햇볕 정책으로 한반도의 먹구름이 걷힐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남북통일은 아직 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상태로 되돌아 갔다. 60년에 걸친 민족의 노력으로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의 유지라는 가느다란 통로만 겨우 열었을 뿐 너비 4㎞에 달하는 휴전선은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북의 정세에 변화가 있다는 뉴스만 들리면 ‘혹시…’ 하며 흥분했다. 1986년 10월 15일경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김일성 사망’ 이라는 오보를 접하면서 통일을 기대했고 지난해 9월10일 ‘김정일 중병설’이 보도됐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북쪽의 정세가 어떻게 급변하드라도 독일처럼 갑작스러운 남북의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경우라도 북의 기득권층이랄 수 있는 공산당과 군대는 동독처럼 ‘항복’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이 한반도에 통일된 자주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만들려는 (동북공정) 시도에서 그들의 속내가 읽혀진다.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라도 통일을 향한 노력을 그쳐서는 안된다. 독일은 통일 20년을 축하하는데 우리 남북은 서해에서 또다시 양측 해군들이 총격전을 벌였다. 우리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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