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무산 자락에서)

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물무산 자락에서


 


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라희’는 이제 4개월이 지난 생명(生命)입니다. 그러나 평소 젊다고 생각하는 나를 일약 ‘할아버지’로 만든 대단한 내 외손녀의 이름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넓은 집에 덩그렇게 둘이만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딸과 아내가 육아(育兒)의 힘든 일상(日常)을 잠시 벗어나려고, 모처럼 한가한 오후를 맞이한 나를 그 대타(代打)로 삼고 광주에 나간 것입니다.


 


 지금 ‘라희’는 양팔을 쳐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으로 자고 있습니다. 몸 위에는 강아지 모양의 베개가 그 작은 몸의 배와 가슴을 한꺼번에 누르고 있습니다. 딸과 아내가 쉽게 잠에서 깨지 않을 거라며 해놓고 간 선심(善心)입니다. 진짜 그런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몰라도 다른 효과는 분명합니다. 그 강아지 꼬리에 달린 붉은 하트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4개월이 지난 생명이 약동(躍動)하고 있음을 계속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보다가 어떤 때에는 숨을 쉬고 있는지 궁금함을 벗어나 불안한 적도 있었습니다.


 


 긴장에서 벗어난 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텔레비전도 켜지 못하고 조용히 처분을 기다릴밖에 없습니다. 어느새 나는 ‘라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뜯어보고 있었습니다. 이마를 보니, 왜 젊은 연인들이 이마에 키스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 아래 눈. 아이들의 눈은 어찌 그리 맑고 깊은지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지금은 그 두 눈을 편안히 감고 있습니다.


 


아! 감은 눈 사이를 비집고 나온 가지런한 눈썹은 언제부터 그렇게 곱게 자랐는지, 그리고 그 아래 알맞게 솟은 양 볼과 그 사이에 오뚝 융기(隆起)한 코와 콧구멍과 은은하게 속이 비치는 콧속. 아이들의 피부는 어찌나 맑은지 거기까지 빛이 새어듭니다. 코의 둥근 처마에서 입술까지 둥글게 패인 얕은 골짜기는 창문으로 들어온 빛들을 얼마나 세밀(細密)하게 가리는지 오묘(奧妙)한 신(神)의 소묘(素描)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밀조밀(奧密稠密)하고 붉은 작은 입술의 뚜렷한 경계(境界), 그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오르내리고 다시 경계를 넘어 내려가 귀여운 턱 선으로 마무리한 동그란 얼굴. 이 모든 것들의 조화(造化)에 언어의 부족함을 새삼 느끼며 창조주께 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그때 ‘라희’의 한쪽 눈이 배꼼이 벌어져 나를 보나 싶어 빤히 들여다보는데 다시 눈을 감습니다. 고개를 돌립니다.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은 어떻게 한 방향으로만 달리고 다른 쪽은 다른 방향으로만 달려 자연스레 가르마를 만들고, 손과 발의 부드러움은 살짝 물어보고 싶은 충동(衝動)이 입니다. 그 끝마다 어김없이 액세서리 같은 손톱 발톱이 빠짐없이 붙어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조화는 더할 나위없고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도 신비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내가 너무 감상적(感傷的)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예전엔 나도 그랬으니. 아버지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보이니 나도 내가 신기합니다. 아무튼 갓난아이에는 어른들과는 분명히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삶에 부대껴오면서 갖게 된 편향(偏向)된 관념(觀念)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무엇이. 다음 글은 ‘라희(羅姬)’ 2. - 갓난아이의 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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