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연수원 수료자들의 44%가 직장을 못구했다는 뉴스는 오보다. 그들은 월400만원의 변호사나 기업의 대리로는 취업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이제 사법고시 합격은 출세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마을 어귀에 ‘아무개씨 아들 사법고시 합격’ 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자기 동네에서 사법고시 합격자를 배출한 것을 스스로 ‘경축’ 한 것이다. ‘이웃사촌’의 경사를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 의식의 발로로 해석하고 싶다. 권력을 지향하는 우리네 속마음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고개를 내민다. 사촌이 논만 사도 배가 아프다. 하물며 부와 권력의 보증수표를 쥔 사촌에게 ‘경축’ 한다고?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시쳇말로 출세가 보장됐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사돈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한마디로 본인은 물론 온 집안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가문의 영광’ 이었다. 하지만 사법고시의 ‘영광’도 이제 사라지고 있다는 조짐이 보인다. 판· 검사로 임용되기는 커녕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올해 졸업한 사법연수생 44%가 아직 직장을 못 구했다고 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어 ‘권력’을 누리다 옷을 벗으면 변호사로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옛날 이야기’가 돼버린 것이다. 취업하기 위해 로펌의 문을 두드려도 실패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에게 면접을 받고 4개월간 150만원, 그후 400만원의 월급을 제안 받는다. 자존심 때문에 발을 돌린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월급 500만원도 깨지고 있으며 과장 대우를 해주던 기업에서도 이제는 대리급으로 낮추고 있다.


 


 사법 연수원 졸업생 44%가 취업을 못하고 있다는 뉴스는 오보다. 진실은 취업을 안하고 있는 것이다. 출세했다고 마을 어귀에 플래카드까지 걸렸는데 월 400만원이나 기업의 대리급으로 취업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서다. 스스로의 기대치와도 너무 동떨어진다. 취업을 못한 것이 아니고 안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사법고시 합격후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눈높이를 낮추는 기간 동안 취업을 미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


 


 판· 검사· 변호사· 의사등이 ‘상종가’ 였던 20여년전부터 이같은 변화는 이미 예상되고 있었다. 이혼 소송을 월부로 맡는 변호사와 이빨을 할부로 빼주는 의사가 나오는 시기가 머잖아 올 것이라는 얘기를 농담삼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의 농담이 점차 현실로 다가 오고 있다. 로스쿨 1기 졸업생이 나오는 2012년이 되면 과연 법조계의 풍속도는 얼마나 변할 것인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법고시 출신자들의 몸값 ‘현실화’ 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이 뛰어나면 고액 연봉을 앞세운 로펌의 스카웃 대상이 되어 임용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사법고시를 합격해도 다같은 합격자가 아니다. 판사나 검사로의 임용도 싫다하고 억대의 연봉을 선택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가 하면 월400만원 짜리 ‘새끼 변호사’나 기업의 대리로 밥벌이를 해야 한다. 신분상승의 꿈도 사라지고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을 것을 생각하니 딱하다.


 


 공부를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한 사람들은 마땅한 대우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 정의다. 놀지 않고 잠도 제대로 못자며 열심히 공부해 자격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와 사법고시 출신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보상이 주어졌다. 특별한 계층으로 인정, 예우와 함께 경제적 보상이 보장되는 사회였다. 자타가 인정하는 ‘특권층’이던 그들의 ‘특권’이 사라지고 있다.


 


 의사들이 병원 개업만 하면 환자가 몰려 돈방석에 앉았던 시절도 흘러갔다. 부도 나는 대형 병원과 문을 닫는 개인 의원이 부지기수다.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월400만원의 봉급도 마다 않는 의사도 늘고 있다고 한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던 시대에서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짐으로써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의사· 회계사· 이공계 출신의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면 사법고시 출신들의 ‘출세’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아무개씨 딸 사법고시 합격’ 현수막도 갈수록 보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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