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대표 영광신문 편집위원

‘밝은 지혜, 맑은 마음’

길 가던 내 눈길을 멈추게 한 어느 초등학교 교문에 걸린 교훈이다. 그저 평범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풀무농업학교 설립자이신 이찬갑 선생의 아주 특별한 호(號)를 연상케 해서 각별했다. 일찍이 1950년대부터 농(農)의 가치를 설파한 선각자 이찬갑 선생은 ‘매일 새벽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뒷동산에 올라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며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연 뒤 아침이면 늘 “밝았습니다”, 낮엔 “맑았습니다”, 저녁엔 “고요합니다”라고 인사했고, 그 인사법은 이 학교의 인사법이 되었다’한다. 밝다와 맑다를 딴 ‘밝맑’이 바로 그의 호였다.

‘밝맑’ 선생처럼 밝고 맑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분투하고 사는 ‘여민동락’이지만, 늘 ‘진보’답게 밝고 맑게 자신의 살림살이를 가꿔가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좋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주의 깊게 개조해야 하고,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엄격하게 검열해야 하는 법인데, 부끄럽게도 현실은 성찰에는 게으르고 학습과 혁신에는 핑계가 많다.

그렇다. 진보의 출발은 바로 자기 살림살이부터라야 한다. 모든 꽃과 새가 새벽에 깨듯이, 이른 새벽 일어나 하루 살림을 준비해야 몸과 맘이 정돈되고 자연스럽다. 먹고 입음을 간소하게 하고 철따라 단식으로 몸을 비우고 정신을 정화하는 수련 또한 필수다. 지성은 학문에서 닦고 이성은 철학으로 닦지만 감성과 영성은 단식의 비움으로 닦을 수 있는 까닭이다. 하루 한 번은 꼭 땀 흘려 노동하고, 친구를 만나 듯 끊이지 않고 매일 매일 기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집안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성평등의 기초를 쌓는 훈련을 해야 옳다. 부부사이라도 불의한 일에는 다툼을 피하지 말되, 부부와 자녀 할 것 없이 평등한 지위로 토론하고 회의하며 존중하는 말법과 배려하는 품격으로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게 사회변화의 바탕이 돼야 한다.

본디 참된 삶의 징표는 그 사람 자체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직책을 가졌냐는 부차적이다. 자신의 몸과 맘을 살피는 자세와 집안의 민주주의 그리고 제 살림살이를 가꿔가는 모습에서 한 사람의 철학과 신념의 정직성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살림살이 얘기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아무리 어려워도 벌이의 1%는 눈 딱 감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바쳐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 좋은 일을 하는 지역단체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빈 곳간을 채워주는 십시일반의 정성은 이미 각성된 시민의 보편적인 사명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국민 1%가 전체 국토의 50%를 소유하고, 상위 5%가 80% 이상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 기형적인 대한민국을 바꿔내기 어려운 탓이다.

내세울 얘기는 못되지만, 개원 이래 여민동락은 후원금품의 10% 이상은 국제구호단체, 시민단체를 비롯해 타 단체와 시설에 눈 딱 감고 나누는 내부 규약을 지켜오고 있다. 곳간을 비우면 비우는 만큼의 서너 배를 채워주는 게 나눔의 섭리다. 그 섭리 덕분에 가난한 살림살이지만, 지금껏 쌀 독 동날 때 없었고, 돈 때문에 다퉈본 적은 더더구나 없다.

 

이제 조금씩, 천천히 더 많은 살림살이의 진보를 위해 노력할 참이다.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은 큰 노력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소걸음으로 스스로를 바꾸고 가정을 바꾸고 좋은 습관과 문화를 익히다보면, 어느 새 닫혔던 이웃집 대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나물 담은 접시가 넘나들며 지역사회 표정이 밝고 맑은 ‘밝맑’세상이 꽃피어나리라.

엊그제부터 출근할 때마다 조부모님께 문안인사 겸 큰 절을 올리고, 부부간의 반말법을 존대말로 바꿨다는 후배가 밝고 맑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네요. 이렇게 작은 변화가 이토록 놀라운 행복을 선물 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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