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범 진(향리학회 회원)

지난 3월 초, ‘법성포초등학교 서울총동문회(회장 김상규)’에서 재경향우들과 동문들이 고향을 찾아 시산제를 겸하여 ‘법성포 옛길’을 걷고 싶다며 인의산을 중심으로 1시간 정도 소요 코스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땅한 코스가 없어 ‘인의산-대통재’ 코스를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최근 법성면(면장 김강혁)에서 법성포 옛길 중 인의산 일부코스를 복원하여 지난 6월 말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법성진 진지도’에 는 약 140여 년 전의 옛길이 그려져 있다. 이 글은 앞으로 제2, 제3의 옛길 복원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지도를 중심으로 향토사의 일부를 간추린 글이다.

 

-법성포의 관문이었던 동짓재-

 

열읍지도등상령에 따라 고종9년(1872)에 채색도로 제작한 ‘법성진 진지도’를 살펴보면 우리고장 법성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완연한 반도모양이었고 오직 동짓재(東嶺峙)만 육로로 열려 있었다. ’동령치를 넘어서니 ‘와우형이 천기(天基)로다.‘라고 도선국사가 일성(一聲)했다는 고개도 ’동짓재‘였고, 법성진성에서 가까이는 무장현 30리, 영광군 30리, 멀게는 한양 칠백십리도 육로로는 이 길로 넘나들었다.

 

이 당시 주요 간선도로는 우리고장의 치소가 있던 진내리 하동문에서 동짓재↔석장리에 이르러 삼거리로 갈라져 제1번 도로가 발막리로 해서 한양 가는 순영대로였고, 제2번 도로가 석장리에서 광주․장성거로였다. 제3번 도로는 덕평으로 해서 도편교 건너 영광 가는 길이었고, 제4번 대로가 독바우↔복룡동↔지아닐로 해서 나루건너 영광에 이르는 병수영대로였다. 소로로는 석장리에서 성촌가는 길과, 석장리에서 제1번 순영대로와 제2번 광주․장성거로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배우게↔발막리↔샘목에 이르는 길이었고, 복룡동 앞길을 따라 언목에서 은선암에 이르는 길이었다. 이 외에 서문에서 조아머리에 이르는 길과 상동문에서 인의산 활터를 지나 샘목에 이른 길이 있었다. 거리로는 진내리 동헌을 기점으로 석장리까지 5리(약2km), 성촌까지 10리(약4km), 덕평까지 십오리(약 6km), 배우게까지 10리(약4km), 복룡동까지 7리(약2.8km), 지아닐까지 15리(약6km), 언목까지 5리(약2km), 은선암까지 7리(약2.8km), 조아머리까지 5리(약2km), 샘목까지 10리(약4km)였다.

 

-석장리 개평꾼’과 되팽리 건달-

 

‘법성진 진지도’에 표기된 조선시대의 이와 같은 도로망을 현재의 행정지명으로 재구성하여 당시를 그려보면, 광주, 장성, 무장과 고창일부 지역사람들은 ①대산→공음면 지린개→덕평→성촌→석장리→동짓재 노선을 따라 진내리에 있는 법성진성으로 진입하였고, 함평과 영광 등지에서는 ②영광읍→와룡리→반하다리→도편교→덕평→성촌→석장리→동짓재 노선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전라북도의 또 다른 노선은 ③참나무쟁이(공음면)→신대리→신계동→덕산→성촌→석장리→동짓재→진내리(법성진성) 길이었다. 따라서 월산리 덕평마을(속칭 되팽리)과 석장리마을은 오가는 길손들과 세미를 나르는 등짐 꾼들로 성시를 이루었고 숙박을 겸비한 주막집들이 즐비하여 술 마시고 투전하며 날 세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히 불량배가 들끓고 이 들의 행패가 심하여 ‘석장리 개평꾼과 대팽리 건달‘이라는 말이 생겼고 당시에 이곳을 지나야 하는 세미꾼들은 집에서 출발하면서 “되팽리 건달들을 피하게 해 주소서!”하고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는 말들이 전래되고 있다. 한편, 백수와 염산지역은 ④길용리(구동)→선진나루→입암리→복룡동→석장리→동짓재 루트였고, 백수읍 대신리와 구수리 일부지역은 ⑤구시미 나루→대통재→진내리(서문)로 진출입하였다. 이외 홍농읍 칠곡리는 ⑥뒷개(검산진)나루→매물고지→진내리 법성진성 루트였고, 또 다른 홍농 루트는 ⑦화천리 샘목(을진)나루→후장동→동짓재→진내리 법성진성이었다. 또한 샘목에서 나루를 건너 전라북도 무장, 해리, 상하 등지로 통했고, 공음면에 있는 ’개갑장터‘를 거쳐 무장, 고창 땅을 밟았다.

 

-관문이 된 독바우-

 

한편 일제는 경술국치(1910)직후인 1912년에서 1918년까지 토지소유권·토지가격 등을 조사하여 측량원도제작에 착수하였는데 우리고장도 이 계획의 일환으로 측량을 실시하여 1915년 8월 20일 완성하였다. 이 측량원도를 살펴보면 이 때 이미 전라북도 무장, 고창에서 그리고 송정리, 영광에서 ‘법성포’로 진입하는 신작로가 개설되었고, 동짓재 길은 사양길로 들어서며 육로로는 이 신작로를 이용하여 자동차가 왕래하고, 바닷길로는 일본과의 무역항로가 개설되어 빠른 속도로 개화된다. 그리고 민가하나 없이 임야였던 ‘독바우’가 우리고장의 관문으로 급속히 변모되었다.

 

-잘 만든 길이 잘 사는 지름길이라는데-

 

이번에 인의 옛길을 복원하면서 김강혁 면장 이하 관계자 여러분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대부분 70대 전후로 나이 드신 분들이 땀 흘려 닦은 길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잘 만든 길이 잘 사는 지름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특성에 맞게 이러한 옛길과 슬로 공동체 개발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한다. 이제는 군에서 나서 지역특화사업으로 새로운 모델을 입안하여 국비지원사업으로 추진해 봄직한 일이다. 지난 달 향리학회 회원들과 더불어 부용창지를 답사해 보니 비교적 짧은 구간임에도 해수둠벙 등 6.25의 상흔에서 우리고장 전기역사, 도로 발달사, 의병창의 때 ‘독바우’에서 남편의 처형모습을 보고 죽는 날까지 60년 동안이나 채머리(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병)에 시달려야 했던 오홍순 의병의 항일이야기,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걸쳐 매향사실이 기록된 ‘매향비’, 천년 전의 ‘부용창’, 전남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굄돌 지주 형 고인돌 등 우리가 가꿔 계승해야 할 유산들과 교육현장이 적지 않음을 보았다.

 

공자가 초나라 대부인 섭공에게 해준 말이 있다. ‘近者悅 遠者來’라고..‘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오게 된다.’는 뜻이다. 법성포 옛길 중의 하나인 인의 옛길이 제1호로 탄생되었으니 하루 빨리 제2, 제3의 옛길이 복원되어 법성포 옛길이 ‘近者悅路 遠者來路‘, ’가까이 사는 우리들이 즐겨 찾는 길이 되고, 멀리 사는 사람들이 찾아 나서는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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