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겨울 사이 영광의 하늘 아래로

강구현/ 칠산문학 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갈매 빛 시린 하늘 곱다랗게 열리는 날, 그대여! 영광(靈光)으로 오십시오. 무덥고 비가 많았던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지루했고 힘들었습니다. 그 오랜 시달림의 끝에서부터 계절은 어느덧 벽공(碧空)을 열어놓고, 어쩌면 조금은 쓸쓸해질지도 모를 당신의 영혼을 영광의 하늘 아래로 초대합니다.

 󰡔아로현(縣)-아(알,해,日) 로(오다의 어간)-󰡕, 예로부터 영광은 해가 돋는 곳, 해가 오는 곳, 빛고을 영광은 이미 당신을 맞이할 초추(初秋)의 넉넉한 햇살 한아름 준비해두었습니다. 혼자서도 좋지만 기왕지사 오시려거든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오십시오. 왔다가 그냥 가지 말고 또 다른 당신을 만나고 가십시오. 해지는 저녁나절 바닷가 어느 곳에서든 넉넉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칠산바다 저녁노을은 당신의 그리움처럼 그렇게 타오를 것입니다.

 하는 일이 신통치 않아 답답한 마음도, 마음 무겁게 짓누르는 근심과 걱정도, 가슴 벅찬 기쁨과 열정도 잠시 동안 내버려두고 유행가 가사처럼 편안히 오십시오. 어머님 자궁 속처럼 아늑하고 편안함으로 당신을 맞이해 줄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며 생명의 물결이 변함없이 살아 숨 쉬는 칠산바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아기자기했거나 파란 많은 당신의 인생처럼 아름다울 것이며, 당신과 마주 앉은 그 사람의 눈동자 속에서도 수평선은 아득히 이어져 작은 돛단배 하나 띄워놓고 당신을 향해 노 저어오고 있을 것입니다.

 마주 앉은 그 시간이 밤이라면 그 밤은 밤대로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 눈동자 속에 이어진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쉬지 않고 항해하는 밤의 나그네처럼 북극성이 파랗게 빛나고 있을 것이며, 당신 인생의 좌표(座標)처럼 꺼지지 않는 당신의 등대로 불 밝힐 것입니다. 언제나 당신의 눈높이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그 수평선은 바로 당신의 길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고향이 영광이라면 이제 당신은 한가위 성묘길 따라서 다시 나그네로 오십시오. 영광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모두가 나그네입니다. 과거의 빛과 미래의 빛, 종교의 빛과 과학의 빛이 오늘 속에 어우러져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영광에는 천문지리풍운조화(天文地理風雲造化)의 성(聖)스러움이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광이 고향인 당신은 추석명절 고향길이라도 나그네로 찾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은 당신의 진정한 고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의 고향이 영광이 아니라면 당신은 당신 마음의 고향을 비로소 영광에서 새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있고, 부처님의 자비(慈悲)가 있고, 삼신할미의 생명의 끈이 있고, 우리의 영혼을 잉태한 칠산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광에서 살고 계시는 군민 여러분께도 이 계절은 정중하게 초대장을 보냅니다. 거절하지 마시고 여름과 겨울 사이의 길목으로 찾아와 잠시 쉬어가십시오. 고요한 달빛 아래 소복(素服)으로 차려입고 수줍어 애태우던 새하얀 그리움이 온 밤 내 달빛 젖은 창백한 얼굴 되어 새벽 하늘 샛별보다 옷깃 먼저 여미고 마는 저 지붕 위의 박꽃 같은 마음으로 당신의 영광을 다시 느껴보십시오. 정열의 커튼처럼 당신의 동공에 드리워졌던 어제의 저녁 노을이 잦아든 뒤 천지간에 달빛으로 출렁이는 밤을 지키던 박꽃조차 고개를 숙이는 새벽녘에는 칠산바다 수면위로 고요히 피어오르는 물안개 따라 함께 피어나는 당신의 꿈과 웅혼(雄渾)한 울림의 숨소리를 느껴보십시오.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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