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자유기고가

  9개월 된 아기를 둔 초보 엄마로서 나의 일상과 고민은 대부분 이 녀석에게 집중되어 있다. 바르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심정이겠으나, 이것이 뜻대로 될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길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신은 얘가 커서 뭐가 됐으면 좋겠어?” 남편이 묻는다. “딱히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쉽지 않지.” “그러니까, 쉽지 않으니까 얘는 그랬으면 좋겠어.”

  세상에 태어나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더 불행한 것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끝까지 찾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것. 나는 이 녀석이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살아낼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아이로 성장하길 원한다.

  꿈을 찾고 키워나가는데 ‘책’만한 좋은 스승도 없다. 책은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올린 모든 지혜의 보고이자 더불어 사는 세상살이의 훌륭한 나침반이다. 자, 그럼 이제 아이에게 무슨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할까. 간단해 보이는 이 문제가 막상 닥치면 정말 어려운 숙제가 된다는 건 아이 키워본 부모라면 모두 절감할 것이다. 인터넷에는 유아 독서에 관한 각종 정보들이 범람하지만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알짜배기 정보를 선별하기란 맘처럼 쉽지 않다. 근처에 번듯한 도서관이라도 있으면 자문이라도 구할 텐데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다. 내 아이에게 선물할 ‘생애 첫 번째 책’을 고르는 과정이 이처럼 힘들 줄은 정말 몰랐다.

  아기 인생의 ‘첫 번째 책’을 부모와 사회가 함께 고르고 선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단순히 부모의 독서 지도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을 넘어서, 그 의미도 각별하거니와 그 자체로 참 멋진 일이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책을 선물하는 사회, 마음껏 책을 읽고 책과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는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이다.

  OECD 주관 국제학력평가에서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핀란드는 세계 1위의 독해력 국가이기도 하다. 전국의 공공 도서관 및 관공서에서는 영유아 독서지도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한 마디로 말해 엄마가 ‘아이에게 무슨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하나’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사례에 비춰보면 <국가경쟁력=교육경쟁력=독서경쟁력>이라는 등식도 성립할 만하다.

  이른바 ‘지식기반경제 시대’에 이르러 책 읽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책 읽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 수십억원의 예산 투자를 아끼지 않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작은 도서관 건립에서부터 관공서를 북카페로 단장해 주민에게 개방하거나 ‘한 마을 한 책 읽기 운동’을 펼치는 등 크고 작은 노력들이 활발하다. 2003년부터 전국 170여개의 보건소, 도서관, 관공서 등에서 펼쳐지고 있는 ‘북스타트 운동’도 주민들의 참여 속에 한국형 ‘읽기 혁명’으로 점차 확산 추세다.

  이러한 사례들은 저출산․ 고령화․ 인구유출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영광을 ‘돌아오는 농촌’으로 재 디자인하는데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경제 활성화를 골자로 한 각종 개발 사업만이 지역을 살리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지자체와 시민단체, 언론이 합심하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 영광을 ‘책 읽는 마을’로 가꿔 간다면 어떨까. 든든하게 형성된 독서 인프라는 교육경쟁력으로 승화되어 영광을 노동-경제-교육-생태적 가치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행복한 보금자리로 만드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아이들의 독서 지도를 위해 학부모들의 책 읽기 모임을 만들거나, 마을별 작은 도서관 건립이 당장 어렵더라도 마을 회관 같은 공간을 사랑방처럼 활용해 책 읽기 모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을별로 주민들이 함께 한 권의 책을 선정해 같이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는 작은 ‘북 콘서트’를 열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실천이 ‘나부터 책을 읽자’는 소박한 결심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책을 읽지 않는데 아이에게 책 읽기를 강요할 수 없듯이, 주민들이 책을 멀리하는데 ‘책 읽는 마을’ 만들기는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국민 4명 중의 1명이 1년에 단 한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니 바야흐로 문맹(文盲)은 사라졌으나 책맹(冊盲)은 넘쳐나는 시대다. 적어도 영광에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독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면 어른들부터 손에 책을 들어야 한다. ‘책 읽는 마을’은 아름답다. ‘책 읽는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는 밝다. 내 아이가 커나갈 이 곳 영광이 그런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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