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대표

  나는 일명 ‘따라쟁이’입니다. 책을 읽든 강연을 듣든 감동받는 게 있으면, 곧바로 흉내를 내곤 한답니다. 물론 작심삼일 일지라도 말입니다. ‘책은 곧 나무이자 숲이다’는 환경스페셜을 보고서 개인서재를 없애고 책을 몽땅 연구원에 기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동안 불안증에 시달리긴 했지만, 이내 집이 정갈하고 간소해져서 좋았습니다. 텅 빈 책방은 지금 찻집이자 사유를 위한 작은 명상방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맨발의 성자로 잘 알려진 이현필 선생의 취침법과 새벽 명상 얘기를 듣고 무작정 따라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 두 시간 만의 잠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고, 새벽 내내 대 여섯 시간 이상 읽고 쓰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하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해가 떠 있을 때는 노동하고 자시에는 잠을 자고 이른 새벽에는 공부와 명상에 성실하라는 가르침이야말로, 날마다 바쁜 탓하며 학습과 성찰에 게으른 내게 얼마나 큰 회초리입니까. 점심 후에 조금 피곤하긴 해도 ‘자시 취침법’으로 얻는 소득은 무한대입니다. 오래도록 미뤄뒀던 자료들을 처리할 수 있고, 사두고 쌓아놨던 책들을 순식간에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이른 새벽 창밖을 바라보며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스승과 친구들을 위해 자필 엽서 한 장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최고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맞는 새벽이야말로 날마다 그 만큼씩 성숙을 키워주는 수련의 시간입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참된 성숙’의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감동받는 일은 죄다 실천으로 따라하면서, 탐욕의 열정을 퍼뜨리는 일이 아니라 바르고 옳은 일로 더욱 경쟁하며 새로운 삶과 사회를 여는 길에 지혜를 모아야겠습니다.

   우선은 은은하고 조용하게 ‘홀로 있는 삶’의 여백을 마련해 봅시다. 너무 많은 정보와 속도 때문에 정작 정리하고 성찰할 시간을 놓쳐가면서까지 더 많은 네트워크와 더 많은 소유를 위해 경쟁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되는 탓입니다. ‘정리 없이는 창조도 없고, 매듭짓기가 없이 커오를 수 없고, 성찰 없이는 진보도 있을 수 없다’지 않습니까.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시대, 그래서 신념이 사라진 시대, 그러므로 다시 깊은 사색을 통해 신념을 세우고 희망을 키워가야만 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입니다.

   나아가 더 간소하고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과 자세로 삶의 품격을 세워가야겠습니다. 도법스님이 말씀하시길 우리 사회의 구조, 경향, 그리고 싸움에 길들여진 우리가 너무나 완고하기에 깨지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판단하고, 결단하고, 선택하는 것에 달려있다 했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만큼 내 삶은 여유로워진다 합니다. 그 만큼 더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아름다워진다 했습니다. 경제에 영혼을 팔고 사는 것이 대세가 된 시대라 해도 고층 아파트와 고가의 자동차, 수십억의 통장은 우리 삶을 평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나쁜 사람’이란 ‘나 뿐인 사람’이랍니다. 새해 우리 가난한 이들을 존엄하게 대하는 참마음으로 옆과 뒤를 함께 두루 돌아보며 나쁜 사람의 대열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새해에는 ‘참된 성숙’이 중심입니다. 어느 해 봄날 무슨 아카데미에서 옮겨 적은 글입니다.

  “봄날의 꽃은 참 짧은 것입니다. 인생도 짧은 것입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일에 매달려 꽃피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산매화가 필 때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저는 어느 집을 방문할 때면 그 사람이 누구의 아내, 아버지, 아들, 딸을 넘어서 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고유의 존재로서 사유와 성찰의 공간으로서 ‘자기만의 작은 처소’를 가지고 있는가를 늘 살펴봅니다.”

   올해는 각자 자기만의 작은 사유와 성찰의 처소 하나 쯤 장만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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