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사회복지법인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난원’의 요리실습 이야기 “음식은 곧 정(情)입니다”

설영기/ 사회복지법인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사람,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의 하해와 같은 자식사랑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까마는, 그중 음식에 얽힌 추억과 고마움은 내가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듯싶다. 모든 자식들에게 있어 어머니와 음식은 동의어다.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내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새끼들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는 옛말이 있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유별나게 맛났던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정성과 사랑 때문 일 게다.

당신의 아들이 어느덧 장년에 접어들었건만,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아직도 내 어릴 적, 그대로다. 당신의 쌈짓돈을 털어 만든 음식을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여전히 행복감을 찾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뭉클해진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사랑을 먹으며 살아왔다.

따지고 보면 음식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를 더욱 질기게 묶어놓은 내 마음의 끈이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 안에는 따뜻한 정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까닭이리라. 어쩌면 그런 어머니에게서 느낀 정과 감성이 지금의 나를 ‘사회복지쟁이’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2월 하순. 사회복지법인 난원에서는 김경옥 이사장이 주재하는 아이디어 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요리실습 프로그램이었다. 요리가「난원」이 지향하고 있는 ‘전문적 기술을 통한 감성공동체 실현’과 여러모로 맞아떨어지는지라 회의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쏟아내다 보니 회의장 안은 금방 활기로 넘쳐났다.

알다시피 요리는 사람들에게 단지 먹는 기쁨만을 주는 게 아니다. 참여자의 감각계발과 사회성을 향상시키고, 근육과 두뇌의 활용으로 심신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종합 활동이다. 오래잖아 참석자 전원은 노인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3월부터 요리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매주 목요일에 진행되는 ‘요리실습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해 곧바로「난원」의 직원들로 구성된 특공대가 만들어졌다.

먼저 메뉴선정과 영양교육은 영광기독신하병원 영양사가 맡기로 하였다. 요리실습 진행은 돌이 채 지나지도 않은 갓난아이를 안고, 대학을 다닌 끝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조리사가 담당하기로 했다. 레크리에이션과 오리엔테이션은 선임사회복지사가, 지원업무는 영광사회복귀시설의 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하는 것으로 각자 역할이 분담되었다.

요리실습장을 깔끔하게 단정해놓고 필요한 재료들도 구입하였다. 음식을 매개로, 사랑과 감성을 나누자는 뜻으로 “세대공감, 정(情) 나누기”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까지 걸어놓고 보니 제법 구색이 갖춰졌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3월 10일. 오늘은 요리실습이 있는 첫날이다. 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70대 할머니 세분이 워낙 빨리 온 터라, 기다리고 있는지가 벌써 90분 째다. 얼굴에 지루함이 묻어나올 무렵 조리복 세벌이 도착했다. 앞 다퉈 조리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느라 어르신들이 마냥 분주하다. 마지막으로 빨간 타이를 목에 맨 뒤, 좋아하는 모습이 영락 아이들과 다름없다.

드디어 요리 실습시간. 기다림이 길어서일까? 직원들의 안내를 따르는 모양새가 흡사 말 잘 듣는 초등학교 1학년생과 같다. 여자로 태어난 죄로 평생을 부엌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세였건만 조리하는 입가에는 이내 웃음꽃이 번진다. 모양 잡힌 동그랑땡이 하나 둘씩 접시를 채갔다. 어느 새 식재료가 동이 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동그랑땡을 입에 넣어주려고 안달하는 통에 실습장이 시끌벅적했다. 정이었다. 음식을 함께 만들고 나누다보니 그렇게 정이 절로 생겨난 것이다. 재미는 덤으로 따라왔다.

직원들이 조리된 음식을 정성스레 담아 요리 실습장을 나서는 어르신들 손에 안겨드렸다. 짐짓 사양해도 좋으련만 대뜸 집어가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어느 때 보다 가볍다. 마을 경로당에 가서 친구들과 나눠 먹는단다. 며칠 전부터「난원」에 가서 요리를 배운다고 몇 번이고 자랑을 한터라, 음식을 안 가져갈 수 없다고 한다. 내가 만든 음식이니 맛있게 먹으라며 친구들에게 너스레도 떤다고 한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난원」이 너무 고맙다는 인사도 어르신들은 빠뜨리지 않았다. 해드린 것에 비해 과분한 치사를 받게 된 젊은 직원들도 기쁘기는 마찬가지다. 세대를 초월한 기쁨과 정. 조그마한 동그랑땡이 그렇게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행복과 사랑은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쯤은 남자들도 가족이나 이웃을 위해 요리를 해보면 어떨까? 모든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재밌는 일. 이번 주말에는 먼저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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