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언론인/프리랜서)

 

“정도전에게 대한민국의 지역적 특질을 평하라고 하면 모든 지역에 대해 ‘이전투구’라고 평할 것이다. 수사권을 둘러산 검·경간, 의·약사간, 정치권의 ‘네탓’공방 등 곳곳에서 밥그릇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공직비리도 심각하다. 모택동의 하방(下放)을 끗발 있는 자들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

정도전이 8도 사람을 평했다.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洗流),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황해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 태조 이성계의 출신지인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 라고 했다. 태조의 얼굴이 벌개지자 “또한 석전 경우(石田耕牛) 올시다”고 말해 태조의 기분을 맞췄다.

정도전이 말한 ‘이전투구’는 진흙탕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는 개처럼 함경도 사람들의 성격이 강인하다는 의미였는데 태조는 ‘명분 없는 일로 볼썽 사납게 싸우는 모양’으로 해석 했던 듯 하다. 오늘날 태조가 정도전에게 대한민국 각지역 사람들의 특질을 평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답할까. “어느 지역이나 똑같이 이전투구 올시다”라고 평해 태조가 폭소를 터뜨릴 것 같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였다. 보다못한 이 대통령이 “밥그릇 싸움”이라며 조정에 나섰다. 수사권을 둘러싼 뿌리 깊은 갈등이 시원하게 풀릴 것으로 기대 했다. 하지만 결과는 ‘국민들은 몰라도 되는’ 내용이다.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결과를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검사들과 모든 경찰들이 한바탕 요란한 싸움을 벌인 것인가. 더 강한 ‘칼’을 쥐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인 검·경과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껏 법을 개정하지 못한 정치인들을 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참담하다.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가 기정사실화 되자 위기를 느낀 약사들이 모두 나서 의사의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약품을 늘리고, 의사의 처방전에는 제약회사를 표기하지 말고 성분만 표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의사들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결의대회까지 할 기세다. ‘밥그릇’을 놓고 의·약사간 한바탕 이전투구가 시작된 것이다. 자칫 모든 약국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모든 의사들이 파업을 함으로써 애꿎은 국민들이 죽어가지나 않을까 불안하다.

저축은행 사건은 ‘대통령의 사람들’과 금융감독권을 가진 기관 전반으로, 나아가 정치권의 ‘네탓 공방’으로 번져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나라에서 힘좀 쓴다는 사람치고 “서민들을 위하겠다”고 목청을 높이지 않은 자가 없다. 그런데 서민들의 피와 같은 돈을 지켜주지 못한데 대해 “내탓”이라며 사죄하고 책임지는 자는 한명도 없다. 돈 먹고, 뒷 봐주고,불똥 튈까 꽁무니 빼는 ‘놈’들만 득실 거린다. 한술 더떠 “네탓”으로 돌리기 위해 이전투구를 하는 모습이라니….

공직자 비리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그 자체다. 정·관가를 강타한 공사 현장식당 로비 사건은 우리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돈에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 주었다. 국토부 공무원과 건설업자의 관계는 ‘봉’과 ‘빨대’ 였다. 국토부 공무원의 이같은 비리를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국민은 공직 사회 전반에 이같은 비리가 관습처럼 횡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부정과 비리에 무감각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국민은 지식과 돈과 권력을 가진자들이 더 많이 갖겠다고 벌이는 이전투구를 언제까지 참고 보아야 하는가. 칼만 크면 뭐하나. 끗발 있는 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인데. 서민을 위한다고? 공정사회를 구현 한다고? 저희들 배 채우고 벼슬 하는 데는 잽싸고 민생 문제에는 입만 나불대면서 언제?

대한민국의 끗발 있는 자들이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분노한 국민들이 중국 모택동 주석이 고위직들을 시골로 보내 노역을 시킨 것과 같은 하방(下放)을 요구하는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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