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대표, 영광신문 편집위원

“주민들과 관계맺기가 쉽지 않던데, 성공비결이 뭐 있나요? ”

요새 여민동락을 찾는 시설과 단체들이 늘어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런데 사람살이 다 똑 같은데 딱히 비결이나 요행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현장의 요청대로 맞춰가면서 하나씩 최선의 성실로 임하는 수밖에.

그런 점에서 여름철 마을방역은 여민동락과 마을을 연결시켜준 최고의 효자활동이라 할 만하다. 도시생활 할 땐 몰랐지만, 시골에선 마을을 습격하다시피 하는 벌레와 모기 탓에 방역에 대한 욕구가 엄청나다. 본래 방역사업이란 게 행정에서 주관하면서 주민들이 대행하는 방식이다. 통상 여름철 석 달 정도 하는데, 2인 1조로 편성해서 일정한 수고비도 받는다. 당연히 별도로 차량 기름값도 행정에서 댄다. 기름값이 비싸서 마흔 두 개나 되는 자연마을을 돌아다니는 일조차 부담이 컸던 현실에서, 기름값 걱정 없이 마을별 순례를 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여민동락 처지에선 맘에 쏙 드는 일이었다.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주민들을 만나야 되는데, 그 동안에는 기름값이 너무 비싼지라 주민들이 필요할 때 딱 맞춰 찾아가는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인근 마을별로 여러 가지 요청이 모아져야만 한꺼번에 방문하곤 했을 정도다. 그런데 방역활동은 해뜨기 전 새벽과 해 지고 난 뒤 해름참이 지나서 하는 일이니, 이 일 저일 가리지 않는 여민동락의 일상에선 업무시간과 충돌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방역차량도 사연이 있다. 여민동락을 설립하고 나서 제일 먼저 샀던 게 1톤 중고 트럭이다. 본래 어려운 시설에서는 자원연계가 중요한 까닭에 광주에 값나가는 고급아파트 경비아저씨들과 네트워크를 이뤄 놓고,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도시에선 이사철에 가구를 싹 바꾸곤 한다. 새 집에 맞게 컨셉을 맞춰야 한다나 뭐래나, 멀쩡한 가구들을 몽땅 내놓는다. 그것도 버리는 비용까지 치러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경비아저씨한테 명함을 주면서 좋은 거 나오면 연락 좀 달라고 했더니, 어느 날 이렇게 전화가 온다. “책상이랑 TV랑 존 물건들 여러 개 모태놨네. 십년은 더 써도 될 물건들을 아까운 줄 모르고 다 내다 버리니, 이런 미친 것(?)들이 없당께.” 웃지못할 얘기지만, 그렇게 매번 도시의 여러 ‘미친 것들’의 기부(?)와 경비아저씨들의 수고가 여민동락 살림을 옹골차게 도와주곤 했다.

방역활동을 할 때 차량은 별도의 지원없이 본인 트럭을 쓰라한다. 그 때 샀던 트럭에 방역기를 딱 실었던 거다. 트럭 앞에 큼지막하게 ‘여민동락’이라고 명함을 박아서 말이다. 방역 트럭은 그야말로 아주 신나게 지역주민들을 만나는 여민동락의 든든한 무기다. 피곤한 줄 모르고 새벽과 밤에 전체 마을을 돌고 또 돈다. 처음엔 단순히 기름값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방역하는 동안 마을을 돌면서 어르신들이 뭐 필요하신가 여쭙게 되니, 방역과 복지가 만나게 되는 셈이었다. 금세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간에는 방역차가 큰길만 쭉 훑고 지나갔는데, 여민동락은 지역복지차원에서 하니까 앞마당까지 쏙 들어가고 외양간에 쏴달라 하면 어르신이 멈추라 할 때까지 쏴 드리니 말이다. “젊은 사람들이 방역을 헌께 몇 십 년 만에 이라고 지대로 해분당께. 아조 시원해 불구만”하신다. 마을마다 주민들마다 이구동성 찬사다.

때론 열정이 지나쳐서 사고도 났다. 면사무소에서 몇 군데는 방역하지 말라 했는데, ‘이런 기회가 어디 있느냐’하고, 단 한 주민도 놓칠 수 없다며 산 밑에 집까지 가서 방역을 개운하게 한 적이 있다. 아뿔사! 하마터면 소송 걸릴 뻔 했다. 벌 키우는 집이었지 뭔가. 벌 키우는 곳은 절대 방역하면 안 된다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여러 일들을 거치면서 여민동락은 여름 한 철 방역활동 때, 몇 년 동안 있어야 할 교감과 소통을 다 하게 된 것 같다. 조금 지나니 마을에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방역을 나갈 때마다 주민들이 왼 손엔 비타민 음료, 오른 손엔 채소 한 단을 들고 계시지 않는가. 추수가 끝나면 여민동락 앞마당에 김장할 때 쓰라고 고춧가루 갖다 놓고, 쌀 가져 오시는 게 아닌가.

방역활동은 이미 마을과 마음을 이어가는 지렛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여민동락은 방역활동 하나로 마을과 함께 더 깊게, 더 뜨겁게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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