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 영광신문 편집위원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 홉킨스대 교수가 뉴스위크 최신호에 게재한 `미국의 종언(The Fall of America)`이란 기고문을 보라. 한 때 `역사는 끝났다`며 '자본주의 시대 이후는 없다‘던 그가, 이번엔 금융위기에 봉착한 미국식 자본주의 비전 붕괴를 `미국의 종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1990년대 그의 시대진단의 오류에 대한 반성이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전파자로서 기능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장 중심 자본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국가 개입을 최소화한 미국식 경제모델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무참히 깨져나갔다. 또한 세계 경제를 이끌어온 미국 경제의 탈선이 전 세계 경제 동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고장 났다. 이는 저항하는 전 세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판결이다. 그런 까닭에 월가의 ‘점거하라’ 운동을 시작으로 야수의 심장인 미국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 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월가 시위대의 '인종적' 구성에서 시위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백인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점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계급과 인종의 관계로 볼 때,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움직임이 최하층이나 절대적 금융소외계층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중산층에서 시작되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가 적극 추진되면서, 자본에 대한 모든 규제를 없애고, 그동안 유지돼 온 복지를 허물고, 금융자본과 투기자본이 활개를 치는 상황에 대한 전면적 반발이다. 월가 시위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1퍼센트에 맞선 99퍼센트의 저항’ 운동이 건설되고 있다. ‘1퍼센트’만 대변하는 이명박 정권의 위기는 깊어지고 노동자ㆍ청년의 분노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한미 FTA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FTA를 맺는다는 것은 곧 그 나라의 산업구조가 미국과 유기적으로 통합된다는 것, 나아가 투자 및 영리 활동을 둘러싼 제반의 제도적 장치가 미국의 '글로벌 스탠다드'로 통일된다는 의미였다. 이는 곧 미국경제와 형식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한 동아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식 모델은 파산을 고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자국 내에서조차 도전을 받는 심각한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2008년 이후 전개된 일련의 사태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조직원리라는 내적 논리의 차원 그리고 그것이 대중적으로 용인되는 정치적 정당성의 차원 모두에서의 실패를 드러냈다. 이렇듯 한국의 지배세력에 '글로벌 스탠다드'로 여겨져온 미국식 정치경제모델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미 FTA에 목을 매는 건 무슨 이유인가. 지금은 전지구적 정치경제의 일대 전환기라는 석학들의 주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혹자는 한미 FTA를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질타하기까지 한다.

“고종은 19세기말 '세계정치'(world politics)가 이미 출현했다는 상황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익힌 '세력균형' 정치를 구사하다가 결국 식민지배를 초래하고 말았다. 1930년대말 조선의 토착 상층계급은 지정학적 균형을 잘못 파악하여 일본 파시즘에 '올인'하다가 자주적 독립의 기회를 놓치고 애꿎은 국민만 무수히 희생시키고 말았다. 해방이 된 후 좌익과 우익은 '냉전'이라는 새로운 상황 변화를 도외시하고 이념과 자기집단 이익에만 골몰하다가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극을 가져온 바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전환기에 들어선 미국식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과연 최근의 세계적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여 나온 것인지 아니면 '우물 안 개구리'같이 10, 20년 전의 통념에 사로잡혀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2009년 마이너스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멕시코, 그리고 2001년 아르헨티나의 비극이 보여주듯이 한·미 FTA는 위기의 전파 통로가 될 뿐 아니라, 위기에 대한 긴급조치마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왜 이미 파산이 증명된 시스템, 미국 내에서조차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 시스템을 우리 땅에 직수입해야 한다는 말인가. 다시 한 번 일어나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등록금을 어떻게 내릴지, 4대강은 어떻게 되살릴지, 의료민영화 저지를 넘어 건강보험 보장성을 어떻게 강화할지, 재벌은 어떻게 규제할지, 가장 폭넓게 우리의 복지를 어떻게 설계할지 토론하자.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한미 FTA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99퍼센트의 뿌리 깊은 저항과 폭넓은 연대를 조직하자.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