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영광신문 편집위원

여민동락공동체는 속칭 ‘복지재벌(?)’이다. 과장하자면, 마을 곳곳마다 문어발처럼 마을복지센터를 두고 있다. 무려 23개나 되는 묘량면 경로당과 마을회관이 모두 다 자칭 ‘여민동락 출장소’인 덕분이다. 그 건물 숫자와 규모만 봐서는 아마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마을마다 있는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마을복지센터로 만들어 마을공동체 안에서 주민들 스스로 우애와 협동의 복지를 이루도록 신명을 돋우는 일, 그게 바로 지역공동체가 여민동락에게 내린 마을복지 심부름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일명 ‘장암산 마을학교’다. 신명과 활력이 넘치는 농촌마을을 소망하는 뜻으로 마을학교 이름을 ‘장암산’이라 했다. 여민동락 정면에 482m의 겸손한 높이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 정상 일대가 평평해서 앞마당처럼 다정하고, 산세가 마치 물위를 떠가는 조각배처럼 생겨 주변의 다른 산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산, 그 산이 바로 묘량면의 정신과 기운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장암산(場岩山)’인 까닭이다.

요새 겨울철 농한기 농촌마을은 마을회관이 시끌벅적하다. 주민들이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아침나절만 지나면 삼삼오오 마을회관을 안방 삼아 찾으신다. 특히 장암산 마을학교가 열리는 묘량면의 가리마을과 구동마을은 저마다 들썩들썩 흥이 나 계신다. “신나부러~~ 재미진당께” 하시며 대동의 어울림이 한창이다. 한 동안 병원에 다니시느라 못 나오시던 동네 어르신들까지 모두 모이니 마을잔치가 따로 없다. 건강체크와 건강체조를 한 뒤에는 민요교실까지 이어진다. 진도아리랑과 뱃노래를 배우고, 동네 누구댁 자녀 이야기가 줄줄 이어진다. 특별한 차림이 아니라도, 김자반, 동치미, 그리고 김치 얹어서 함께 준비한 점심밥상도 더불어 하니,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

어느 날인가 십시일반 모은 마을 종자돈을 털어 디지털 TV를 설치할 때는 스스로 가꿔가고 보태는 마음에 뿌듯해 하시니 보는 이도 마음이 뜨거워졌다. 계급장 높은 양반들이 떡 하니 사주는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조금씩 손길을 나누고 보태서 마련한 마을기금으로 마을회관을 꾸미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마을복지의 단초가 아니겠는가.

기실 궁극적 목표는 따로 있다. 이런 공감과 연대의 과정을 거쳐 장암산 마을학교의 꿈은 단연 ‘마을공동체’의 복원과 완성이다. 이른바 마을회관을 실핏줄 거점으로 삼아 마을별 대동회를 활성화 해 가는 것이다. 과거 촌락사회의 운영을 논의하고 의결하는 자치적인 집회조직인 대동회 말이다. 과거 대동회에서는 마을의 임원선출, 예산과 결산보고, 공유재산의 관리대책, 규칙제정, 공부(公賦)의 대책, 임원의 보수결정, 수리시설과 농로 등 마을 공동의 개발대책 등을 비롯한 마을생활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공동이익과 공동행위, 사회적 협동에 관한 문제가 토의, 결정되었다. 의사 진행은 촌락의 공식적 지도자인 동장(또는 이장)이 주관하지만, 중요한 일은 유지로 불리는 비공식적인 지도자들과 미리 상의해서 대동회의 공론에 부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대동회를 바탕으로 대동경제, 요새 표현으로 사회경제적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의 새로운 농촌경제의 모델을 발굴 발전시켜가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을학교는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이러한 상호부조정신을 강조하여 사회적 협동을 강화하는 조력자의 역할이자 농촌마을의 희망을 설계하는 공동체의 학습장이다. 복지담론 과잉 팽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국가주도 복지모델과 시장주의 복지모델 모두가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서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지역공동체 중심 복지모델이다. 지역공동체 중심의 복지모델은 지역공동체가 자체 힘으로 복지를 해결할 능력을 키워 간다는 전제 위에서 국가의 지원이 결합되는 형태다.

지역공동체 중심의 복지 모델이 갖는 결정적 차이점은 복지는 재정이든 기금이든 돈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공동체적 인간관계 회복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중시한다. 그럼으로써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복지를 지향한다. 장암산 마을학교는 여민동락공동체가 제시하는 공동체 중심, 사람중심 마을복지의 아주 작은 또 하나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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