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영광신문 편집위원, 여민동락공동체 원장

며칠 전 농촌 관련 단체에 강연을 간 적이 있다. 농촌살리기를 업무로 하는 분들이 200여명이나 앉아 계셨다. 강의 전에 이미 농촌 활성화를 위한 지역별 모범사례도 발표하고, 모둠토론도 하고, 외국의 선진사례 공부도 하는 등 진지하고 유쾌하게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좀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농촌의 10년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희망적이라는 분은 손 한번 들어주세요." 그러자 웅성거렸다. 아뿔사, 아무도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농촌살리기를 고민하는 분들에게조차 미래의 농촌은 조만간 사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는 반증이었다.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 확신이 없다는 얘기다.

전 세계 수많은 미래학자들과 석학들이 21세기 문명의 중심은 '농촌'이 될 것이라 진단하는데, 우리 실정은 어떤가. 현재 한국농업은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이다. 농업인구 4.5%, 거기에다 고령화율은 30%를 훌쩍 넘었다.

위기의 근본은 명확하다. 선진국은 보물단지 모시듯 하는 농업을 우리는 천덕꾸러기로 본 탓이다. 딱히 개방농정이니, FTA니 거론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총선 당시 정치권의 농업 농촌 공약도 죄다 속 빈 강정마냥 절박한 위기의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근본을 뒤흔들어 농업 농촌을 살릴 비전이 없다.

그러나 지금 '식량이 안보다'라는 명제는 단순히 구호가 아니다. 미국의 농업보조금은 한국의 4배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 주요국가가 농업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농업을 중시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기후변화와 피크오일, 70억 인류 시대를 맞아 해외에서는 모두가 식량자급율을 높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과 북미 선진국은 지속적인 노력과 국가정책으로 대부분의 식량자급률이 100%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OECD국 중 최하위인 25%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쌀을 제외하면 5% 이하다. 하지만 '값싼 농산물' 시대는 더 이상 없다. 유엔의 식량가격지수가 날마다 상승가를 경신하고 있다. '세계인구 폭증과 신흥시장의 급속한 성장이 농산물 수급의 균형을 깨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식량 뿐 아니라 농산물의 전반적 가격이 급상승 할 수밖에 없는 근거다. 그런 점에서 농업은 이미 미래산업이자 전략산업이라 할 만하다.

최근 일본정부는 '농사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연간 150만엔을 7년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농업 농촌을 살리겠다는 특단의 대책이다. 전 세계 농지가격이 오르면서 중국같은 경우는 아예 아프리카를 사들이고 있다. 아프리카를 '차프리카'(Chafrica)라 부른다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정당별 공약으로 비교해도 그다지 농정정책에 관심이 높지 않다. 정책의 단순한 열거일 뿐이다. 식량안보와 경쟁력, 그리고 복지 가운데 핵심가치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하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정책은 농민 누구에게나 매월 현금으로 지급되는 '농민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녹색당의 선거공약이었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정액을 일률적으로 평생 지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제안이다.

지금까지 뿌려지고 있는 이른바 농촌대책용 국가예산을 농민만을 위해서 쓴다면, 그것만으로도 재원은 충분하다는 설파다. 한미 FTA 등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있는 정치현실에서 이런 정책이 과연 실효가 있을까마는, 그나마 수박 겉핥기를 넘어 숨통 틔울만한 계책이라 할만하다.

그래서다.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자. 한미 FTA로 농촌은 거의 사라지고 농민은 3% 이내로 감소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농업은 어떤 경우라도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했다. 농업 농촌 활성화와 관련한 사회협약기구를 설치하고 먹거리 기본권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농촌이 붕괴해도 '공산품을 팔아 농산물을 사오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생각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우리에게 농업은 없다.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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