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원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 탓에 또다시 세상이 시끄럽다. 최대 피해지역이 될 농어촌은 당연하고, 모처럼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교육계가 한목소리다. 무릇 어떤 정책이든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집단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합리적 믿음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허나 교과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은 탁상행정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소규모 학교의 최소 적정 학급수와 학급당 학생수를 초·중등 6학급 이상, 고교 9학급 이상,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상으로 '최소 적정 규모 기준'을 포함하여 통폐합 대상 학생들이 전학을 희망하면 허가를 해줘야 하는 강제조항까지 뒀다. 그간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학부모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됐지만, 이 시행령이 적용되면 사실상 인위적 통폐합을 유도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농·산·어촌 및 부도심 지역의 교육은 한마디로 끝장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체 초·중·고교 1만 1331곳(2011년 4월 1일 기준,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 가운데 통폐합 대상으로 볼 수 있는 20명 이하 학급당 학생수 규모의 학교는 3,138곳으로, 전체 대비 27.7%에 이른다. 더욱이 통폐합 대상이 되는 학교의 86.3%에 해당하는 2,708곳은 읍·면지역과 도서벽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의무교육 대상자들의 권리를 철저하게 박탈하는 것과 같다. 전국적으로 집단적 반발이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소규모 학교가 폐교 위기에 내몰릴 뿐만 아니라 예산 및 시설투자 지원 등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어 농산어촌 및 도서벽지의 교육 황폐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그간 줄기차게 추진해 온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 뚜렷한 성과가 없자, 교과부가 특단의 대책을 통해 통폐합에 속도를 내려는 것이란 오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는 소규모 학교의 학부모들이 반대하면 실질적으로 학교를 통폐합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들에게 큰 학교로 전학을 쉽게 해주는 학교 선택권을 주면서까지 길을 열어 줬다. 반발이 거세자 교과부는 이번 개정안이 권고적 기준안일 뿐이지 강제적 통폐합 기준안이 아니라고 한다. 군색하기 짝이 없다. 지금 당장의 집단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법률로 정해지면 종국에는 행정적으로, 혹은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게 돼 교과부의 의도대로 갈 수밖에 없다. 굳이 강제성이 없을 바에는 입안 전에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지금과 같은 분란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간 통폐합 정책의 명분으로 동원됐던 학생 당 소요경비와 학업성취도 저하 등의 논리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애당초 정책의 근본이 틀렸다. ‘작은 것’은 죽이고, ‘큰 것’의 몸집만 키우겠다는 경제방정식은 교육 뿐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용될 수 없는 반칙이자 패착이다.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작은 학교는 작은 만큼 ‘강점’이 있고, 큰 학교는 큰 만큼 ‘약점’이 있는 법이다. 작은 학교의 대표적 약점으로 지적되는 복식학급(한 학급에서 두 학급 이상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형태)과 상치교사(자신의 전공이 아닌 교과를 가르치는 것)는 투자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낙인사항이 될 순 없다. 이같은 강제적 통폐합 정책은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도 역행한다. 특히 정부 방침대로라면 시골의 면 단위의 초중학교는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과 같다. ‘1면(面) 1교(校)’를 원칙으로 농촌지역 학교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의 속사정을 안다면 이런 식의 일방적인 입법예고는 일치감치 없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런 방식의 학교의 통폐합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지역으로서는 인구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타나 대도시의 인구 분산이나 지역 균형 발전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국적으로 소규모 학교를 잘 운영하는 곳을 벤치마킹해 학교 살리기에 나서는 것이 먼저다. 이미 ‘작은 학교 가꾸기 사업’으로 학생이 늘어나는 곳도 나타나는 등 여러 곳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교과부는 먼저 지역 사정을 고려해 농어촌 지역 학교의 통폐합 문제는 지역 교육청에 최대한의 재량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현행 교육법에 명시돼 있듯 교육감의 자율권이기도 하다. 그래서다. 자율권과 교육자치를 교과부가 흔들어서는 안 된다. 재고해야 맞다.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안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심각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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