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영광신문 편집위원

대선이 임박했다. 후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연일 분야별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약이란 시대정신에 대한 입장이자, 국가비전에 대한 오랜 숙고와 학습 끝에 나온 철학의 반영이어야 한다. 그런데 마치 모든 후보들이 밀린 방학숙제 하듯 벼락치기 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후보들이 모여 정제된 토론회 한 번 속 시원히 한 적도 없다. 그리고 정치쇄신안을 두고 줄다리기 하던 야권은 이제사 단일화 협상에 들어갈 태세다.

그래서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정책들이라 대세에 편승한 '졸속'과 '짝퉁'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평민들 입장에서야 선거철만 되면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까 기대하지만, 그 끝은 늘 실망과 배신으로 이어진 탓이다. 지난 4월 총선 무렵만 하더라도 보편적 복지국가 논쟁이 뜨거웠는데, 이젠 이마저도 그리 탐탁지 않다. 여야를 불문하고 경제민주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외피만 그럴싸해서인지 도무지 손에 잡히는 파격이 없다. 심지어 한 때는 '2013년 체제'라는 용어까지 등장시키며 정권교체를 넘어 새로운 '체제'까지 꿈꾸던 대선이 아니었는가.

이번 대선은 5년마다 찾아오는 또 한번의 대선일 수 없다. 2011년 아랍에서 시작해 월가 점령시위로 분출된 세계적인 저항을 보지 않았는가. 시대는 극단적인 시장근본주의를 넘어서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른바 시대교체, 즉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 후보는 당의 상징색을 붉은 빛깔로 바꾸는 '전향'을 했지만 그가 발표하는 정책은 그만큼 전향적이지 않다. '99% 저항의 시대에 100% 국민행복론을 들고 나오면서 구체제 속에서 부를 독점한 1%를 숨기고 있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시장근본주의 넘어서라고 주문

문재인 후보는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선언한 후보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여전히 관념과 추상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안철수 후보 또한 정치로 수렴되지 않는 국민적 소망과 미래가치를 대변한다고는 하나, 시대교체를 가능케 할 만한 정책과 동력에 있어 여전히 '생각'에 멈춰있는 구석이 많다.

이번 대선에선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준다며 집단최면을 걸었다가, 결국에는 취임초기부터 파탄을 맞이해 버린 이명박정부에 대한 분노에 찬 심판에 그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개혁정부라고 믿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청산이어야 한다. 취임하자마자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만든 국정비전 보고서를 받아보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시대를 교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다. 청와대 주인과 사람 몇몇을 바꾼다고 시대가 교체되진 않는다. 가장 드라마틱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자 자유로운 시민들의 열광적 지지를 통해 당선된 민주개혁의 상징 노무현 대통령도,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 ‘한미 FTA’를 강행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심지어 현재는 박근혜 후보마저도 출마 선언문에서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라며 지금의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을 정도다.

저마다 반신자유주의자가 되어 거대한 전환과 근본적인 변화 그리고 낡은 체제의 청산을 외치지만, 정책의 내실은 군색하다.

비정규직 없는 현대자동차, 백혈병 없는 삼성전자, 정리해고 없는 쌍용자동차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명확한 답안지를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제 더 이상 쇠고기 수입개방과 한미FTA 반대를 위해 국민들이 수개월 동안 노숙하면서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가능한지 제시해야 한다.

청산 외치지만 정책 내실은 군색

복지국가에 운명을 거는 확고한 정책과 의지, 재벌중심의 독식체제 해체를 필두로 한 경제민주화의 분명한 대안, 자주적인 개인들의 협동과 공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에 부응하는 사회적 경제, 그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대한 섬세한 비전을 내놓는 후보는 과연 누구인가.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라고 울부짖었다는 브라질 대통령 룰라. 우리에게 '룰라'같은 '눈물의 대통령'이 될 후보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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