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영광문화원장

참 허술한 음식점이었다. 읍내의 중심도 아니었다. 길눈 밝은 나의 아내였지만 묻지 않고는 찾을 수가 없어 차를 세우고 묻기를 두어번. 도착한 음식점은 정말 요즘에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은 아니였. 간판부터가 허수룩 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도 허수룩 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 흔하디 흔한 인테리어라고는 씻고 보아도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결코 불결하거나 너절너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위의 언덕 배기나 산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나 꽃들이 심어진 정갈한 화분 몇 개가 한지로 바른 벽면 앞에 놓여있었으며 군데군데 몇 개의 시화와 서예 몇 점이 걸려 있어 먼저 왔던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열심히 감상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큰 식당의 홀에 오늘의 행사가 현수막으로 걸려 있었다.

「2012. 가난을 위한 송년회」 라는 문구부터가 색다른 느낌으로 가슴에 닿았다. 그래서인지 빨리 시작했으면 하는 기다림으로 앞좌석에 앉았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70여석의 자리가 꽉 찼다. 식전 공연이 펼쳐졌다. 인근 폐교직전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악기 하나씩을 들고 나와서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재롱을 부리는 프로그램이었다.

20여분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17명의 학생들 개개인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안겨주는 사장님의 진심어린 모습에서 박수소리가 그칠줄을 몰랐다. 아직 박수소리가 홀안을 떠나지도 않은 분위기 속에서 젊은 아주머니 두 분이 김칫독을 밀고 오시더니 사장님께 답례의 선물을 하셨다.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어머니들이었다.

이어서 본 행사는 아주 간단하였다. 사장님의 <가난을 위한 서시>의 낭송과 10여명정도의 사원들이 동료들에 대한 칭찬 한마디씩, 그리고 나서는 서로 함께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르는 순서였다. 화려하지 않았으며 흥청망청 취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 와중에도 사랑의 모금함에는 작은 봉투들이 가득히 쌓였으며 그 봉투가 든 함을 그대로 들고 복지시설을 사원들이 함께 가는 모습이며 사장님과 사원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정답게 얘기를 나누며 어깨를 겯고 가는 사람 손을 잡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정을 듬뿍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돌아오면서까지도 사장인 그 친구가 왜 그곳에서 송년회를 했을까의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런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야 그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지난밤의 의문이 풀렸다. 며칠 전 우연히 그 식당에를 갈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한테서 장사도 안되고 남편마저 불의의 사고로 치료중에 있어 살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은 변두리의 허수룩한 집일망정 한번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회사식구들끼리 논의하여 그리로 정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한번 도와주면 큰 힘이 되는것을 외면해야 되것느냐는 사장님과 가족들의 결정이 이렇게 한 가정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생각이겠느냐고 말하는 사장인 내친구의 <가난을 위한 송년회>의 의미는 차가운 세밑의 훈훈한 이야기가 아닐까

번화가의 식당에서 네온사인 반짝이는 분위기 속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흥청망청 노래방을 거쳐 비틀거리는 송년회 보다야 조금은 아쉬웠을망정 장사가 안되어 풀이 죽어 있는 변두리 식당 아주머니께 희망을 샘솟게 하고 시골 작은 학교 초등생들을 초대해서 망년회도 함께하고 기량을 베풀 수 있는 기회도 주고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주는 세밑의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좋을 것 같아 지난주에 초대받고 달려간 송년회를 떠올려 보았다.

오늘아침 지방일간지의 독자란에서도 <착한 송년회>, <멋진 송년회>의 투고가 있어 달라져가는 송년회를 느낄 수 있었다. 욕심 같아선 우리지역에서도 이런 <멋진 송년회>나 <착한 송년회>나 <가난을 위한 송년회>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리문화원에서도 <문화 송년회>를 준비했다. 지난 18일 한전문화회관에서 창무극 공연과 함께 군민한마당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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