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숙제를 풀다가 인생의 길을 얻다〉

설영기/ 영광노인복지센터장

필자가 존경하는 우리 지역의 어른 한 분이 재미난 판을 하나 벌렸다. 기발한 생각 뿐 아니라 위트와 재기가 넘치는 이 어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동화 한편을 들려준 뒤 시사점이나 느낀 점을 적어보라고 했다. 푸짐한 상금까지 내걸자 주위는 이내 들썩거렸고, 필자 역시 이 흥미로운 시합에 도전장을 내기로 하였다.

동화를 요약해 보자.〈옛날 어느 왕국에 오랫동안 웃음을 잃고 슬픔에 잠긴 공주가 있었다. 보다 못한 왕이 자신의 딸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는 자에게 큰 상금을 하사하겠다는 방을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궁전으로 몰려들었지만 모두가 실패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 백성이 공주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가지고 싶다는 걸 알고 달을 대신해 금 구슬을 주면서 마침내 그녀를 슬픔에서 벗어나게 했다.〉처음에 이 이야기에 대한 시사점을 가벼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필자는 점차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바가 몹시 커, 서툰 글 솜씨지만 그 글을 간추려 이곳에 옮겨보려 한다.

도대체 무엇이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왕국의 공주를 깊은 시름에 빠뜨리게 만든 걸까? 바로 그건 허상과 환상 그리고 비현실적인 욕심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손에 쥘 수 없는 허상을 쫒느라 정말 중요한 걸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나의 현재 위치에 충실치 못한 채 부질없는 환상에 빠져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이랴.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세상의 이치를 잊어버리고 단숨에 큰 것을 얻고자 욕심을 부려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도 자주 보게 된다.

왜 사람들은 각자의 분수와 상황 속에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모르고 사는 걸까? 허상은 허무를 부를 뿐이요, 환상은 현실의 반대말이며, 욕심은 순리와 뜻이 다른 말이라는 걸 깨우치며 살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달은 지구의 ⅓ 크기로 약 38만 4,400Km 거리에서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이다. 또한 어느 누구도 감히 독점할 수 없는 자연의 엄연한 일부다. 이를 알지 못한 어리석은 한 공주의 무모함이 스스로와 많은 사람들을 아픔으로 내몰아버린 것이다. 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희망과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는 저 먼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집 지붕 위에 있다는 걸 공주는 안타깝게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헛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자신뿐 아니라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편해지는 까닭이다. 세상을 동화나 드라마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그걸 모르면 철들지 않은 게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호화스러운 궁전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살았던 공주는 현실과 바깥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다.

그렇다면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얼까? 성공한 자는 뜬구름을 쫒는 대신에 현재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다. 반면에 실패한 자는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에 젖어 지금 해야 될 일도 소홀히 하여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숙연하게 만드는 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유리 속의 예쁜 공주를 볼 때보다 현실의 고난과 불리함을 뚫고 큰일을 일궈낸 인간 승리의 모습을 접할 때이다. 이런 까닭에 아름답고 고귀한 신분이지만 허무맹랑하게 달을 탐했던 공주에게는 손가락질을 보내면서도, 숱한 역경을 딛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에게는 감동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외가에서 자란 이순신 장군은 서른둘의 늦은 나이가 되서야 과거에 급제했고,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장교로 전전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중앙에 이렇다 할 조직이 없던 그는 임금의 의심을 받아 수차례 공을 뺏기고 파면과 옥살이를 감수해야 했다. 장군은 그럼에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민과 군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파했다. 세계 해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23전 23승의 불멸의 기록은 앞을 내다보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 노력한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현재에 대한 충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상상속의 달. 어쩌면 밤하늘의 휘영청 밝은 달은 우리들 가슴속에 떠있는 저마다의 목표요 희망이며 행복일 수 있다. 그 귀한 달을 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가 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사다리의 위쪽을 달의 방향으로 세우기 위해선 반드시 사다리의 아래쪽은 땅에 닿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엔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 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한 발짝도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숭고한 뜻이 담겨 있다. 명심할 건 또 있다. 사다리는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성급하게 올라가려는 과욕이 자칫 나를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경계하라는 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만고의 진리가 있다. 현재의 내 모습에 따라 나의 미래가 전적으로 결정되고, 만족하지 않는 삶에는 어떤 행복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 현재의 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이 순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금쪽같이 여기며 살자. 지금은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뜬구름 같은 금덩어리에 눈멀지 말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에 충실하자. 누가 뭐래도 ‘지금’이 가장 빛나는 ‘금(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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