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영광노인복지센터장

올해 3월말로 우리나라 자동차등록대수가 1,900만대를 돌파했다. 국민 2.5명당 차량 1대를 운전하고 있는 셈이다. 전국의 자동차등록대수가 11만대에 불과했던 1969년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눈부신 자동차 기술의 발전과 비약적으로 늘어난 자동차 보유대수만큼 과연 우리 국민의 운전예절이나 교통문화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한 번 따져볼 문제다.

1980년대만 해도 부자의 상징이었던 자동차. 이제는 서민들에게도 일상생활에서 뗄 수 없는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이미 현대인의 일부가 되어버린 자동차는 우리에게 양날의 칼이다. 사람들에게 신속한 이동과 편리함을 주는 반면, 교통사고로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20만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며, 목숨을 잃는 사람만도 5천명이 넘고 있다. 문명의 이기라는 빛 속에 드리워진 자동차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우리가 매일 잡는 자동차의 운전대엔 자신과 타인의 목숨이 동시에 올려져있다. 때문에 운전자는 성급함과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아야 한다. 성숙한 교통문화와 교통예절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내 잘못엔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한없이 너그럽지만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공격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이런 이중성이 자동차가 굴러가는 도로 위를 살벌하고 거칠게 만들고 있다.

원인은 과학의 발전 속도를 사람들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한데 있다. 그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게 바로 운전이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운전예절마저 지키지 않아, 다른 운전자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고 화나게 하는 일이 길거리에서 허다하게 벌어진다. 오죽하면 운전대를 잡으면 부처님도, 수녀님도 욕을 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으랴!

도로 위에서 흔히 만나는 나쁜 운전자들의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차가 따라오거나 말거나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차창 밖으로 던져 뒤차를 놀라게 하는 운전자. 양보라는 선물을 받았음에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채 고맙다는 표시조차 않는 무례한 운전자.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세월아네월아하며 더디게 감으로써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운전자. 휴대전화를 켠 채 운전하면서 다른 차량의 운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운전자.

주정차예절은 또 어떠한가! 좁은 골목에 주정차를 해 놓는 바람에 진행을 막아놓고서는 상대방이 경적을 울렸다고 되레 적반하장인 운전자. 주차장에 멀쩡하게 세워둔 차를 자신의 차로 빠지지 못하게 붙여놓고는 전화번호조차 남겨놓지 않은 운전자. 심지어 교행이 빈번한 1차로에다 비상깜빡이도 점등하지 않은 채 주정차를 해놓고 가버린 운전자. 출입구를 막아버린 차량을 빼달라는 휴대 전화를 받고도 뒤늦게 나타나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운전자. 그들을 보면 운전대를 빼앗아 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로위의 언어이자, 운전자의 기본예절인 방향지시등(일명 깜빡이’)을 사용하지 않는 운전자도 주변에서 쉽게 만난다. 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불쑥 끼어들어 뒤차를 화들짝 놀라게 하는 운전자.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차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측에서 냅다 뛰어들어 진행차량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드는 운전자.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하다고 해야 할 상황인데도 손을 내밀거나, 비상깜빡이를 켜지 않는 안하무인들. 좁거나 혼잡한 차로에서 주정차를 하면서 후방차량에게 사전예고인 깜빡이를 켜지 않고 무조건 차를 세우는 운전자. 사거리 또는 삼거리에서 깜박이 작동 없이 좌우회전을 하는 꼴 보기 싫은 운전자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이 가쁠 정도다.

어차피 자신의 편함만을 생각하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얄미운 운전자를 일거에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리라.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마음에 필자는 우리 지역의 운전자들께 좋은 교통문화를 만들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 깜빡이 하나만이라도 잘 켜자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소통과 대화가 없으면 오해와 불신을 낳듯이 깜빡이는 같은 운전자들끼리 서로에게 베풀어야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다. 깜빡이는 차선을 변경하거나 방향을 전환할 때, 후방 차량이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꼭 필요한 기능이자 수단이다. 또한 비상깜빡이는 돌발상황이 생기거나 상대 운전자에게 양해 및 사과를 구하는 소중한 표시다. 이런 까닭에 깜빡이를 켜는 것은 도로교통법 제381항에 적시된 법적의무이기 전에 운전자라면 당연히 해야 될 도덕적 의무라는 걸 깊이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자신이 차안에 있기에 신분이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익명성 때문일까? 아니면 운전자체가 사람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기 때문일까?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하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기억할 게 있다. 운전은 인격의 거울이고 인격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우리 지역의 첫 인상을 긍정적으로 심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외지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 처음 왔을 때 영광 사람들은 깜빡이를 참 잘 켜고 다닌다.”는 칭찬이 저절로 나오도록 교통문화를 만드는 것 아닐까? 우리 모두 운전을 하면서 깜빡이만이라도 잘 켜고 다니자. 그래서 앞으로는 운전대를 잡아도, 욕하는 사람이나 욕하게 만드는 사람이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