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대학가에 대자보 열풍이 일고 있다. 과거의 그것에서 진화된 모습이다. 인권이나 명예 훼손도 없고 선동적이거나 비판적이지도 않다. 자기 성찰과 반성의 내용이다. 학생들의 대자보가 나라의 위기를 돌파할 동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유신정권 시절 대학가의 대자보는 반독재, 반정권 시위를 촉발하는 주요 수단 이었다. 독재 정권의 부당성을 폭로, 비판하며 시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정권은 대자보 떼어내기와 시위 막기에 엄청난 인원을 투입 했다. ‘기관원들은 대자보와 시위 주동 학생 색출에 혈안이었다. 대자보에는 언론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뉴스들도 많았다. 그 뉴스들은 자연스럽게 시중에 흘러 확대재생산 됐다.

서울의 여대생들이 광주 모 대학생들에게 면도칼과 달걀을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반정권 투쟁에 나서지 않고 있으니 잘라버리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남녀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는 해괴한 소문도 퍼졌다. ‘양민의원 사건이라 불리면서 실제 보았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유언비어. 대자보가 시위에 이어 이같은 유언비어를 낳는 세월이 길어지면서 유신 정권은 붕괴됐다. 후일 일부 학자들은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은 정권 말기 현상이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대자보가 다시 등장 했다. 역시 대학가에서 시작됐다. 진화된 모습으로. 제목부터 관심을 끈다. ‘안녕들하십니까?’. 비판적이고 선동적이었던 내용은 자기반성으로 바뀌었다. 사회가, 정치가, 나라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데도 외면하고 자기 앞만 보고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이다. 대자보를 쓰고 붙인 것이 자기라고 소속과 이름을 정확히 밝힌 것이야말로 가장 뚜렷한 진화다.

고려대의 한 학생에서 시작된 대자보는 전국의 대학으로, 대학에서 고등학교, 해외로까지 번지고 있다. 내용은 나라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안녕하시냐는 것이다. 주로 지난 1년간 이슈가 된 사안들을 거론하고 있다. 철도 민영화, 전교조, 갑을 관계, 밀양 송전탑, 교육, 대통령 선거 등이다. 그들은 이같은 이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데 나이 든 어른들께서는 안녕하시냐고 묻는다.

비난과 선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인권이나 명예를 훼손하지도 않는다. 성찰과 반성으로 점철된 대자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 무관심하게 넘겨서는 안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이런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변명으로 넘겨서도 안된다. 우리 가정과 사회 나라의 미래인 학생들이 어른들을 향해 쏟아내는 말들이니 당연히 경청하고 성의 있는 답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 발전에 학생들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광주와 신의주 등 전국에서 독립을 외쳤다. 4·195·18의 주역이기도 했다. 학교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계층간, 지역간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정치는 실종되고 경제는 침체기를 맞았다. 남북관계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사이에 끼인 신세다. 안팎으로 위기다. ‘안녕들하십니까?’하고 묻는 학생들의 물음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동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모든 이슈들에 대해 자기와 직접 관련이 없어서, 혹은 정치적인 무관심으로 말도 행동도 삼가고 있는 어른들은 과연 안녕할까? 외면해버리면 안녕할까? 아이들이 안녕하지 못한데 어른들이 안녕할 수는 없다. 그들이 안녕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은 이들의 질문에 답하고 실천할 의무가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빈부와 동서를 따지고 가르는 짓거리는 나라가 안정을 찾은 후에나 하든지 말든지.

연예인 성매매 사건이 터졌다. 결론은 유언비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848(1213) 금요칼럼은 3단 끝에서 일곱 번째 줄 아쉽다가 끝입니다. 뒷 부분은 편집상 오류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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