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권/ 영광원전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13년이 저물어간다. 작년 10월 짝퉁부품 사건으로 시작된 범대위 활동을 돌아보니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대체로 보람차고 의미있는 한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주민검증단을 만들어 원전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3자 검증을 통해 정부가 쳐놓은 전문가의 높은 울타리를 걷어내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민간환경감시센터가 활성화되었다.

민간검증의 결과 제시된 건의사항들은 상당부분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원전의 안전성을 위한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그밖에 범대위의 직접 요구사항은 아니었지만 운전운영협의회와 원전안전협의회, 핵폐기물공론화위원회 등이 만들어져 원전에 대한 지역주민의 다양한 참여통로가 확보되었다. 여기에는 먼저 범대위에 힘을 실어준 영광군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짝퉁부품 사건이 터지자마자 군민 3000여명이 원전 앞에 모여 항의시위를 함으로써 정부와 한수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이후로 범대위 전체회의가 열릴 때마다 다양한 사회단체의 대표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군민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군의회 의원들의 발빠른 행보와 책임있는 자세는 범대위의 위상을 한결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그리고 공동행동과 영광군청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범대위가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렇듯 지역주민이 1급 국가보안시설을 두고 정부와 대등한 협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관리주체인 한수원의 무능과 부패에 기인한 바 크지만 영광군민들의 단합된 힘과 열정이 더 중요한 요인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모두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영광신문에서도 지적된 바 있지만,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범대위가 원칙 없이 흔들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결정타가 범대위의 해체이다. 정부와 약속한 주민검증단의 활동기간이 최하 2년임을 생각하면 주민검증단을 출범시킨 상급단위로서 범대위의 해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는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지고 해결할 단위가 없다는 게 큰 문제이다. 대신 의회 원전특위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지만 의원들은 앞으로 선거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범대위가 해체됨으로서 원전감시에 대한 무게중심은 자연히 감시센터로 집중되었다. 범대위가 있을 때에는 감시활동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 책임을 범대위가 맡았지만 이제는 감시센터가 홀로 감당해야만 한다. 물론 감시위원 중에 의원이 3명이나 있어 자동으로 의회 원전특위와 연결되기는 하겠지만 자칫 정치적 판단이 내려질 위험이 있다.

감시위원 선정도 위원장인 군수의 정치적 입김이 너무 강해 감시센터의 전문성이 훼손되는 일이 위원교체 때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감시센터의 운영위원장을 민간인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는 법에 의해 불가능하다고 하니 결국 군수의 결단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제6기 감시위회의 부위원장으로 민간인이 선임된 것은 다행이다.

이제 우리는 감시센터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군민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감시센터가 활성화됐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범대위의 막강한 뒷받침이 있어 가능했다. 감시센터의 역할과 기능을 규정한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범대위도 없는 상태에서 한수원이 무시하기로 맘만 먹으면 저항할 방도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지역언론이 활동수당을 빌미로 감시위원들에 대한 비판을 계속한다면 자칫 어렵게 얻은 민간감시활동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일부 위원들의 무책임한 행위가 생업을 뒤로 하고 몸 바쳐 일하는 다른 감시위원들의 노고를 뒤덮을 수는 없다. 사실 범대위가 일궈낸 성과의 대부분은 감시위원을 포함한 실행위원들의 헌신적 노력 덕분이다.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비판하되 위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향후 원전운동의 주된 방향은 법개정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첫째는 민간환경감시센터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개정이요, 둘째는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한 재원확보이다. 이 두 가지가 미비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돈만 받아먹었지 한 게 뭐 있느냐?”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쪼록 범대위가 열어놓은 지역 거버넌스의 기회를 잘 이용하여 원전의 안전성을 더욱 높이면서 궁극적으로 지역민이 원전의 운명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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