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여민동락살림꾼

세계 각 도시의 21세기 문명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는 광장, 공원, 도서관, 자전거이다. 도시 곳곳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특정 분야의 서적들을 마련하여 전문성을 강화하며 각각의 도서관들을 연계하는 등 작은 도서관의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광주에는 책 읽는 벤치 in 광주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집 앞 벤치에 책을 놓아두고 공유하는 시민독서운동의 일환이다. 본래 네덜란드의 루일방크(Ruilbank) 프로젝트’(Ruil은 네덜란드어로 교환이라는 뜻)에서 착안된 책 읽는 벤치는 다 읽은 신문을 누군가가 다시 읽을 수 있도록 남겨두고 가는 지하철 관습을 문화교류로 연결시킨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 하나로 네덜란드 9곳의 공원 벤치가 미니 공공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책 읽는 벤치 in 광주프로젝트는 단순한 책 읽기 운동이 아니라 책으로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공유문화운동이다. 각 벤치마다 벤치지기가 있어 자신을 책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가져다 둔다. 차츰 시간이 지나자 이 벤치에서 책을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다 본 책을 가져다놓는 사람도 생겼다. 책을 공유하면서 그저 앉아 쉬는 벤치가 작은 도서관이 된 셈이다.

광주 뿐만 아니다. 지역 내 문화공동체로서 도서관의 중요성이 증대되자 지자체들도 도서관 육성 및 지원에 뛰어들고 있다. ‘인문학 도시의 슬로건을 건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지자체는 시민들의 활동 증진을 위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인문학 서적에 대해 책값의 30%를 지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광군의 도서관 정책은 어떠한가. 군내 도서관은 영광읍의 군립도서관과 얼마 전 신축한 공공도서관, 백수, 홍농과 법성에 운영 중인 작은 도서관 3곳이 전부이다. 묘량, 불갑 등 면단위 변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군 차원에서 범 군민 한 책 읽기캠페인을 전개한다고는 하나 어린이, 청소년, 성인분야 각 한 권씩 3권을 선정해 참여를 독려하고 있을 뿐 초라하기 그지없다.

혹자는 사람이 없는데 책은 누가 볼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여민동락공동체는 몇 년 전 책은 공공재다라는 제안과 토론 끝에 각 가정의 책들을 모두 모아 작은 책방을 만들었다. 원래 사무실로 쓰던 공간을 과감하게 개방했다. 책이 모이자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옹기종기 책 읽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마을의 작은 학교 살리기운동을 진행하면서 도시에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책을 기증해오기도 했다. 이 작은 책방은 이제 방과 후 아이들의 공부방이자 놀이터가 되었다. 큰 품 들이지 않고도 마을에 작은 도서관하나가 생긴 셈이다.

아직 영광도 늦지 않았다. 열악한 지자체 재정 여력으로 모든 마을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작은 도서관을 갖출 수는 없다. 대신 마을에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빈집을 수리하거나 공공기관을 개방해 작지만 특색 있는 마을 도서관으로 만들어 주민들 모두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주민들은 집에 있는 책을 마을 도서관으로 보내 공유하고, 마을사서로 직접 도서관 운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역사와 유산을 보존하고 농사비법 등도 공유하는 장이 된다면 도서관 자체가 마을공동체의 거점이 될 것이다. 나아가 마을 곳곳에 이런 도서관들이 들어서고 작은 도서관이 연대하고 협동하는 마을별 도서관 네트워크를 실현한다면, 영광군은 책으로 마을을 가꾸는농촌지역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과 의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을별로 공공시설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할 빈집 수리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책은 가능하면 공유를 위해 주민참여형 도서 기부를 기본으로 하되, 생태유기농에너지인문학 등 특정 분야의 전문 서적을 갖추기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도서관별로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농촌의 지역적 특색에 부합하는 색깔 있는 도서관만들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더 이상 형식적인 책 선정 투표를 통한 주민 참여를 강요하는 대신, 농민과 귀농귀촌인, 그리고 도시민까지 참여하는 농민 인문학 강좌등을 지속적이고 상시적으로 열어 오늘날 농민의 삶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도서관과 마을의 만남은 이렇듯 영성과 성찰의 힘을 키우는 처소여야 한다. 더불어 여러 프로그램도 좋은 사람, 좋은 마을, 좋은 세상을 만드는 학당이 되었으면 한다. 결국 도서관 하나가 온 마을의 문화적 풍요를 불 지피는 뜨거운 아궁이이다. 그것이 바로 마을공동체이다.

<여민동락에서의 칼럼리스트인 강위원 위원께서 건강상의 이유로 이영훈 사무국장이 이번 칼럼을 대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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