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살림꾼

책 읽는 벤치 in 광주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집 앞 벤치에 책을 놓아두고 공유하는 시민독서운동의 일환이다. ‘책 읽는 벤치는 본래 네덜란드의 ‘Ruilbank 프로젝트(10년 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루일방크(Ruilbank) 프로젝트)’에서 착안했다 한다.

‘Ruil’은 네덜란드어로 교환이라는 뜻이다. 다 읽은 신문을 누군가가 다시 읽을 수 있도록 남겨두고 가는 지하철 관습을 문화교류로 연결시킨 프로젝트다. 대형 빨간 클립을 이용해 공원벤치에 책이나 잡지 등을 꽂아두고 시민 누구나 편하게 읽고 교환해 갈수 있도록 한 것이다.

 ‘책 읽는 벤치 in 광주프로젝트에서는 벤치지기의 역할이 중요하다. 벤치지기는 하나의 벤치를 맡아 기부를 전제로 책을 집게로 집어 놓거나 바구니에 담아 내어놓는다. 그리고 소셜네트워크 등에 자신이 어떤 책을 어느 장소에 놓아 뒀는지를 공지한다. 광주시민 서일권씨는 14번째 벤치지기. 벤치는 서씨가 사는 아파트 앞에 있다. 서씨는 이곳에 자그마한 바구니를 달고 윤슬이 라임이네라는 이름도 붙였다. 벤치에는 주로 그림책을 놓아둔다.

유치원 등하원을 위해 엄마와 아이들이 기다리면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차츰 시간이 지나자 이 벤치에서 책을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다 본 책을 가져다놓는 사람도 생겼다. 책을 공유하면서 그저 앉아 쉬는 벤치가 작은 도서관이 된 셈이다. 공공기관이 제안해서 생긴 게 아니다. 한 시민의 제안으로 자연스럽게 광주지역 곳곳에 책 읽는 벤치가 늘어가고 있다.

벤치마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책갈피와 스티커가 있다. 벤치기기마다 독창적 방식으로 책을 공유한다. 클립 외에 바구니, 플라스틱 통 등 재활용품을 이용한 책 게시와 보관 그리고 기타 끈이나 리본 등으로 고정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엽서나 스티커 등을 통한 소통도 한다. 건의사항도 안내하고 짤막한 글도 적어둔다.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 특별한 관리도 한다. 비닐팩에 담아두거나 잠시 회수하기도 한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순히 책 읽기 운동이 아니다.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벤치를 모두가 즐기고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책으로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공유문화운동이기도 하다. ‘책 읽는 벤치프로젝트를 버스정류장에 적용하는 사례도 있다.

광주 광산구 운남동에서는 필자가 관장으로 있는 더불어노인복지관과 주민센터가 협력해서 버스정류장마다 책꽂이를 만들고 있다. 수많은 버스정류장을 책으로 꾸며갈 참이다. 버스정류장 뿐 아니다. 공원의 모정에도 책꽂이를 설치하고 있다.

그래서 온 동네를 손만 뻗으면 책을 꺼내 볼 수 있는 책마을로 만드는 것이다. 책꽂이마다 책을 관리하고 교환할 시민사서를 정해 주민들 스스로 도서공유운동에 동참하게 하고 있다. 영광군에서도 맘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다. 크게 돈 드는 일도 아니다. 작은도서관과 대형 공공도서관과 연계해서 온 마을을 도서관으로 만들어가는 주민행동을 응원하면 된다.

곡성군 죽곡면에는 농민도서관이 있다. 몇 평 되지 않는 조그마한 도서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꽤나 유명한 도서관이다. ‘공부하는 공동체, 공부하는 농민을 목표로 매년 농민아카데미를 열어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농민도서관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다. 도서관은 마을의 희망을 키우는 아궁이다. 도시에선 마을마다 작은도서관 개관이 대세다.

그렇다고 당장 모든 마을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작은도서관을 갖출 수는 없다. 그래서다. 책 읽는 벤치, 책 읽는 정류장, 책 읽는 공원을 만드는 주민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혹여 시골사람들이 누가 책을 보기나 하나?”면서 농민과 농촌시민을 폄하할 일이 아니다. 단 한 명일지라도, 그 사람이 소중한 법이다. 그 사람이 희망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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