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술/ 영광3대대 군무관

가을은 여유롭게 물들어가는 계절이다. 나 홀로 독야청청 하는 것도 좋으나 타인과 더불어 여유롭게 물드는 사람이, 더불어 물들려는 삶이 더 뜻도 멋도 있다 하겠다. 가을은 익으면서 비워가는 계절이다. 나무가 그렇듯 가을을 사는 우리도 한 해의 삶을 여유롭게 수확하면서 어떻게 살아 왔고, 어떻게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사색과 고독의 시간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여행도 독서도 좋은 길이나 필자는 가을에 한 장의 편지를 써 보기를 권한다. 낙엽이 나무가 전하는 글이라면 사람에게는 편지가 있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빠르고 편리하기는 하나 마음 깊이 다가오는 느낌이 적어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소통홍수의 시대에 소통부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기본적으로 미분의 세계이고 머리의 공간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셜미디어에 비해 편지는 적분의 세계이고 가슴의 공간이다. 편지는 나와 너의 모든 인연을 훑으며 쓰고 지우고 또 써내려 간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의 가슴을 거쳐 쓰여지고, 받는 사람의 가슴을 거쳐 읽힌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마셜 맥루한의 말마따나 편지에서는 보내는 사람의 떨림과 받는 사람의 울림을 촉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편지는 소셜미디어와는 결코 차원이 다른 질감의 솔미디어라 하겠다. 이 점에서 편지는 디지털 SNS 시대에도 결코 낡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새로운 소통방식이라 하겠다.

소통은 마음과 마음이 닿을 때 가능하고, 소통에서 사랑이 움튼다. 편지는 사랑의 씨앗이다. 행사기간만이라도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 아니 섭섭하고 미웠던 사람에게도 사랑의 하트가 새겨진 편지 한 통을 가을바람에 실어 보내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하늘빛은 한층 푸르러지고, 땅의 열기도 가라앉았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숨결에 가을 냄새가 물씬하다.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면서 지난날과 그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이 계절. 이때쯤이면 가을 편지한 자락이 생각나야 제격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손 편지’, ‘친필(親筆) 편지를 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보니 언제 손 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대학시절과 기자생활 초창기만해도 부모님께, 또 친한 친구에게 그리움과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내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탄절 카드조차 온라인으로 대신했고, 연하 카드 몇장 보낸 것이 전부인 것 같다.

편지는 말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글로 쓴 편지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입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편지를 쓰기 위해 일일이 편지지와 봉투를 구입했을 것이며, 그 편지에 쓴 글들을 하나하나 써내려 갔을 것이며, 또한 상대방을 생각하며 말보다는 다른 깊음으로 한번 더 생각해서 작성했을 편지에서 더욱 많은 감동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편지는 역사를 바꿔놓을 정도의 위력도 갖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메시지는 후대 저항운동의 물꼬를 바꿔 놓았는가 하면,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서한을 주교들에게 발송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단초를 마련했다.

한 소녀가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수염을 길러 보세요라고 권한 한 통의 편지는 미국 역사의 전기가 됐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겉봉에 쓰인 내 이름을 보면 사랑에 찬 심장의 고동에서 절묘한 음악을 끌어내 들리지 않는 심포니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실토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앓이하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한 최초의 동양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써주신 10장의 손 편지를 끼고 다니며 힘든 시간들을 이겨냈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리우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남겨진 편지이다. ‘친필 편지는 척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그늘 같은 쉼터가 된다. 고달픈 출근 길 우연히 발견된 아빠, 힘내세요라는 딸아이의 편지보다 더 신나고 힘나는 격려는 없을 것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소통의 부재(不在)’에 있다.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닫혔던 벽을 허무는데 손 편지보다 좋은 것은 없다. 꽃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편지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마음의 꽃편지는 닫혔던 세상을 녹이는 희망이 된다. 짤막해도 친필로 전하는 메시지는 큰 격려가 된다. 고된 직장생활에 지친 아빠에게, 온 몸에 성한 데가 없으면서도 자식만을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오랫동안 못 뵌 스승님께, 마음을 열지 못했던 친구·선후배에게, 사랑하는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은 연인에게 이 가을, 한 통의 손 편지를 보내보자.

이번 가을은 독서의 계절만이 아니라 편지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못 쓰는 글씨이면 어떤가. 맞춤법·철자가 좀 틀리고, 문장이 더러 꼬이면 어떤가. 정성이 가득 담긴 손 편지라면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만큼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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