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미/ 영광여성의 전화 대표

지난 13일 안산에서 발생한 인질극살인사건은 스토킹 피해의 잔인한 결말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사건은 우리 사회의 스토킹 피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뼈아픈 사건이다. 가해자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여 전 남편을 찾아가서 몸싸움 중 그를 살해했다. 또한 그는 두 딸(아내의 전남편과의 자녀)을 인질로 잡고 별거 중인 아내와의 만남을 요구하다가 그 작은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그러나 사건 이전부터 다양한 방법과 협박 수단으로 인해 가해자의 아내는 이미 일상적이고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조차 협박과 불안을 겪었다. 또한 사건이 발생하기 나흘 전, 가해자가 아내의 허벅지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수사상담관 B(59·전직 경찰관)씨에게 "가해자가 아이들을 죽인다고 했다. 그가 구속될 수 있느냐"며 신변보호 조치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수사상담관은 스토킹으로 인한 피해 상황의 심각성을 간과한 듯하다. 수사상담관은 흉기에 찔린 피해자에게 현행범이 아니라서라는 이유로 고소 안내 만을 했을 뿐 피해자 안전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흘 후 전 남편과 어린 의붓딸을 살해 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20111026일 개정 시행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경찰의 판단 하에 경찰이 가정폭력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되어있는 긴급 임시조치 조항을 두고 있어 경찰의 안이한 대응이 참극을 불렀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 참혹한 스토킹피해의 현실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인질극의 끔찍함만이 아니다. 피해자가족 두 명이 목숨을 잃기 전부터 이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가해자로부터 극심한 괴롭힘과 수많은 위협의 순간을 겪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은 스토킹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부부사이에 그럴 수 있지, 혹은 좋아해서 그러는 걸~ ~’하는 지극히 사소한 개인사로 치부해 왔던 스토킹 피해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날로 심각해지는 스토킹 피해로 인해 삶이 위협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의 현실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피해를 중단시키기에는 법과 제도적 현실이 참으로 부족하다. 물론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정된 현행법은 스토킹을 8만원의 범칙금으로만 규율하고 있다. 이는 애정문제, 알아서 해결해야 할 개인적인 일, 그래서 경범죄(가벼운 범죄)’ 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오히려 강화시킬 뿐이다. 살인까지 부르는 스토킹이 어떻게 경범죄란 말인가? 범칙금 8만원으로는 더 이상 피해를 없앨 수 없다.

이는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스토킹의 특징과 다양한 피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스토킹을 중단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개입이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중심의 스토킹 관련법과 제도적 장치의 재구축이 매우 시급하다.

덧붙여, 스토킹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시각도 바뀌어야한다고 본다. 스토킹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여전히 자극적인 보도를 하는 것을 보노라면 암담함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보도 초점은 가해자가 인질극을 벌인 이유였다. 언론은 일제히 이 사건을 부인 외도 의심해 인질극, 외도 의심이 낳은 참변, 연락이 안 돼서 범행 등으로 보도하며 가해자의 범행동기만을 보도하는 모양새였다.

이는 자칫 만나달라는 협박과 위협을 받던 피해자의 절박함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피해자에게 상황의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관련기사의 댓글만 보더라도 가해자의 만나자는 요구에 왜 빨리 만나지 않았냐, 왜 빨리 대응을 못했냐,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지금껏 살았느냐?는 등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질책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피해자 혼자 힘으로 스토킹 피해의 두려움을 견디고 대응하기란 불가능하다. 위와 같은 보도와 사회적 인식은 피해자를 고립시키며 그 피해를 가중시킬 뿐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스토킹 피해로 인한 위협을 홀로 감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스토킹 피해는 중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스토킹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라는 것을 공감하고 그 대응을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토킹은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결코 남의 일만도 아니다. 심각한 스토킹 범죄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우리 모두의 문제이자 공통의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속히 스토킹 피해를 중단하고 피해를 지원할 수 있는 (경범죄가 아닌)강력한 법과 제도의 마련을 원한다. 우리는 이런 참담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끝으로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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