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난원영광노인복지센터장

불신의 사회. 높은 담장과 육중한 자물쇠로도 모자라, 여기저기에 설치된 CCTV와 각종 첨단 무인경비시스템으로 무장된 삭막한 세상.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옳은 일이지만, 작금의 현실은 사람을 온전히 믿는 사람도 찾기 힘들뿐더러,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쳐도 바보 취급을 면치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열쇠다.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이고, 이는 친구끼리도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건강한 사회로 가는 출발점은 무엇보다 상호간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개인이나 가족 간에도 신뢰가 으뜸이 되는 덕목일진대, 하물며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있어서 신뢰의 중요성은 더 말해 무엇하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29.7%까지 곤두박질을 쳤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금이 가다보니 그 견고했던 콘크리트 지지율조차 여지없이 붕괴되었다. 추락을 거듭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고 있자니 착잡할 따름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 나라의 내 대통령이 아닌가! 오래전부터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불리던 박 대통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꼬. 누가 뭐래도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신뢰였고, 위기 때마다 그녀를 구해준 힘도 신뢰였다. 집권 3년차를 맞는 박 대통령. 그녀에게서 이제 신뢰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대통령에게서 떠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신뢰’, 그리고 불통이었다. 서로 상극의 이미지인 신뢰불통’. 이런 연유로 잘못은 우리에게도 있다. 신뢰는 소통에서 출발하는 법인데, 불통의 대명사에게 신뢰를 기대했으니 말이다.

지난 해 8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8개 주요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시민단체(22.4%)를 가장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14.3%2위를, 언론은 8.1%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종교단체(5.3%)4위였고, 군대(3.9%)와 법원(3.1%), 국회(2.7%)가 그 뒤를 따랐다. 민망할 뿐이다. 게다가 검찰은 2.5%로 꼴찌였다. 인과응보다. 경찰이라고 나을게 없다. 갤럽이 한 달 전에 한국인이 경찰에 대해 갖는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결과는 OECD 34개 회원국 중 뒤에서 2번째였다.

법과 원칙의 최전선이자 최후의 보루인 검경마저 국민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되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국가 주요기관들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우리 사회 전체가 불신으로 병들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죽하면 대학생들이 기업이나 정치인보다 처음 만난 사람을 더 신뢰한다고 말할 정도겠는가!

작년, . 국민들의 억장을 무너뜨린 세월호참사가 터졌을 때, 대통령뿐 아니라 여야 정치권은 죄다 앞 다퉈 사과하며, 해결책과 대책을 만들겠다며 공언했다. 허나 피지도 못한 꽃들이 물에 잠긴지 무려 10개월이나 지났건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 국민 사기극에 기가 찰 노릇이다. 군대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총기난사 사건과 가혹행위가 연이어 터지면서 국민들을 놀라게 했던 군은, 뼈를 깎는 자기 개혁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다짐했건만, 오늘도 사건사고는 끊이지를 않는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국가, 신뢰감을 느낄 수 없는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국민들 입장에선 고달프기 짝이 없다. 더 불행한 건, 나라에 신뢰할만한 큰 어른이 없다는 거다. 그 때문인지 작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교황은 존경받기에 충분했다. 권위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해 온 교황은 방한기간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쌍용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밀양·강정 마을 주민들을 미사를 통해 만났다. ‘세월호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눈물을 닦아주기도 했다. 교황이 한국에 머문 기간은 고작 45일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그 어떤 지도층도 하지 않은 약자에 대한 공감과 소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교황을 존경하는 이유는 이런 그의 소통을 통한 신뢰의 이미지에 있다.

그렇다면 신뢰 사회로 가는 지름길은 뭘까? 그건 먼저 반칙과 특권을 없애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걸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사람은 신뢰를 잃으면 끝장이야. 집안일도, 나랏일도 모두 마찬가지야. 신뢰를 주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스스로를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네라고 말하는 87세의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의 가르침이 마음속을 파고든다. 도대체 왜,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졌다는 대한민국의 고위층들은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않은 시골 노인만도 못한 걸까.

가슴은 내게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머리는 내게 섣불리 누군가를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며 훈계를 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정을 내렸다. 그래, 좀 손해를 보더라도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자. 그 순간 신뢰는 산산조각 난 세상을 빛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다.”라고 했던 헬렌 켈러의 말이 비로소 내 머릿속에 들어와 큰 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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