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난원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 중 최고령이었던 강복순(가명) 할머니께서 지난 2월 노환으로 영면하였다. 그녀의 나이 향년 104. 이 세상 어느 누구의 죽음인들 슬프지 않겠는가만은, 어르신의 부고를 전해들은 필자의 마음은 침통하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달에 많게는 여러 명의 어르신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것이 노인복지센터장의 숙명이건만 유독 강씨 할머니의 별세가 색다르게 다가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필자가 시설장으로 몸담고 있는 난원의 영광노인복지센터가 문을 연건 20084월이었고, 첫 번째로 입소한 어르신이 다름 아닌 강씨 할머니였다. 143센티미터의 자그마한 체구에 비록 치매가 있었지만 워낙 온순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격인지라 단숨에 직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물론 섬기는 어르신들 한분 한분을 차별 없이 정성껏 모시는 게 노인복지시설 직원들의 한결같은 자세겠지만, 사랑받는 것도 저하기에 달렸다는 걸 일깨워준 어르신이 바로 강씨 할머니기도 했다.

일 백년을 넘게 살다 가신 어르신께 이런 표현이 무례할지 모르겠지만, 강씨 할머니는 우리 난원의 귀여운 마스코트였다. 죽기 직전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데다가 잔병치례도 별로 없고, 늘 조용히 웃고 다니니,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늙으면 저리 늙어야 될 텐데.”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 어르신이 한 보름 영광기독병원에서 입원하다가 자식과 지인들의 얼굴을 모두 본 뒤 자정이 되기 직전에 편안하게 세상을 등졌으니 가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1912년 영광군에서 태어나 한 세기를 뛰어넘어 2015년에 생을 마감한 강씨 할머니의 죽음이 이다지도 남다른 건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 격동의 한국의 근현대사가 오롯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지난해 연말에 개봉해 1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 덕수할아버지. 그는 어려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채 가장이 되어 가난과 싸워야했고, 60년대에 눈물 나는 파독 광부 생활을 거쳐 70년대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월남전에 자원하여 결국 하지장애를 겪게 된다. 80년대엔 전쟁 때 잃어버린 여동생 막순이를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통해 극적으로 상봉하는 등, 그야말로 그의 한 몸이 곧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교과서라도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필자가 노인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듯 우리 세대는 감히 감당조차 하지 못할 그 험악한 시련의 역사를 숱하게 견디고 살아온 까닭이다.

필자는 국제시장의 주인공 그 덕수할아버지에게서 강복순할머니를 보았다. 그녀는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로 집어삼킨 2년 뒤인 1912년에 우리 지역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온통 나라 잃은 설움으로 살아야 했다. 그녀의 나이 39세 때 영광의 한 마을에서 이장 일을 맡아본 남편은 국군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인민군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고, 결국 남편은 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무렵 셋째 딸마저 병으로 잃고 말았다.

남은 딸 둘을 어렵게 시집보내고 허름한 집에 덩그러니 남은 건 혼자된 그녀뿐이었다. 그 시절, 보릿고개가 아닌 때도 배고픔을 면키 어려웠던 60년대와 70년대 초반을 여자 한 몸으로 버티고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배고픔과 헐벗음보다 그녀를 더 괴롭힌 건 적적함이었다. 그렇게 50년을 더 살았다. 그녀의 작은 체구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더께를 이길 수 없었다.

나이 90이 넘어 불청객인 치매가 왔다.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딸 둘을 두었지만 그들 모두도 일흔을 넘긴 노인네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가 삶의 종착지로 선택한 곳이 영광노인복지센터였다. 누구보다도 굴곡지고 한 많은 삶을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늘 밝았다. 웃음을 띤 채, 남에게 털끝만치도 해를 끼친 적 없던 그 어르신을 어찌 마음에서조차 쉽게 떠나보낼 수 있으랴!

아브라함 링컨은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마흔이 되면 그 사람의 얼굴에 자신의 성격과 수준이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사람의 나이 여든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모습에 책임을 져야 되는 건 아닐까? 여든 살이 넘으면 그 사람의 인생과 삶이 그 자신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비춰지기 때문이다.

추모의 열기가 더없이 뜨거웠던 장례식. 효심이 깊은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100세가 넘어 돌아가셔도 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생굴곡의 험난한 세월을 거치고도 노년을 티 없고 해맑게 살다 가신 그녀. 필자도 과연 그녀처럼 그리 살 수 있을까. 영정 사진 속에 들어있는 강복순 할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자상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유독 혼자만이 미소 질 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울게 만들었던 그녀의 삶. 우리에게 던져 준 그 큰 가르침이 내 마음을 이토록 울리는데 이를 어찌할꼬. 바람이 휙-하니 지나갔다. 이 세상에 잠시 소풍을 왔던 104세의 어르신도, 그 바람을 타고 두둥실 하늘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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