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영광문화원장

선생님!

예비군복 차림의 건장한 청년이 김선생 앞으로 달려오더니 인사를 한다

, 너 광식이 아니냐!

김선생과 광식이는 손을 잡고 죽마고우라도 되듯 어쩔 줄을 모른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모습이 아니다. 김선생이 평소에 아이들과 어떻게 지냈는가를 한눈으로 볼 수 있었다.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술집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맨 처음 나서는 허름한 소주집으로 둘이는 들어갔다. 술을 주문하는 모습도 서로 먼저였다. 술값을 치룰 때도 먼저 내겠다고 할 것이 뻔한 일처럼 보였다. 김 선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광식이, !

말을 빼자마자 광식이가 김선생의 말을 막았다.

선생님, 저 공부 못하고 늘 까불기만 했다고 하실 것이죠

김선생이 무슨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지레 짐작으로 광식이는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광식이는 뭔가 먼저 말을 하려고 애썼다.

선생님 저 남대문쪽에서 식육점으로는 요것이예요.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힘있게 펴보였다.

, 너는 돈도 잘 벌 줄 알았어. 넌 꼭 사업을 해야 돼.

김선생은 무엇인가 지피는 것이 있어 그 말을 한 것이다. 광식이는 왜 김선생이 그런 말을 하시는지 조차 묻지를 않았다. 그리고는 자기 이야기만 하려는 꼴이 꼭 25년전 학교에서 아무말이라도 저 먼저 하려던 모습이었다. 자기는 중학교 밖에 안다녔는데 자기 아내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자기보다 영어도, 한문도 많이 알아서 챙피하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도 하였다. 자기의 1학년짜리 아들이 시내 학교에서 공부가 1등이라고 자랑도 아끼지 않았다. 김선생은 고개만 끄덕이다가 이내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말았다. 그리고는 긴 생각에 젖어 있었다. 25년전 광식이가 학교 다닐 적의 교실 안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광식이라 하면 김선생이 교단에 들어가 5년째 되던 해에 시골 어느 학교에서 가르친 아이였다. 1학년 짜리 아주 작은 꼬맹이였다. 가정 형편에도 어려울뿐더러 도롯가 상가 옆에서 살고 있었기에 생활 습관 또한 부잡한데가 많았던 아이였다. 공부라고는 아예 할려고도 않았지만 그래도 말을 하는데는 똑똑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광식이만 일어서면 웃음바다가 되곤 하였다.

1학기말 통신표를 나눠줄 적에는 얼마나 예뻤는지도 몰랐던 일이 제일 먼저 머리를 스쳤다. 김선생이 통신표를 다 나눠주고 자기 통신표에 가 있는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했을 때 손든 학생 중에 광식이도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선생은 당황해지기까지 했었다. 잘못으로 를 주어버렸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체육까지도 였을 광식이었는데 저 애가 왜 손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광식이 앞으로 갔을 때 광식이는 자를 손으로 짚으면서

선생님 요것이 지요.

, 맞다 맞다. 고것이 자다. 오메 우리 광식이가 자를 아는구나.

김선생은 얼마나 기뻤는지 광식이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들이 우우 모여 광식이 통신표를 볼려고 야단 법석들이었다. 그래도 광식이는 자신만만하게 모여든 아이들한테

여기있냐!하면서 벙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광식이가 짚고 있던 자는 분명히 자 였기에 김선생은 놀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짚고 있던 자가 통신표 뒷면의 수료증이라고 씌여진 곳을 펼쳐놓고 그곳의 자를 짚고 있었기에 대견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참느라고 애썼던 25년전의 일이 광식이를 더욱 새롭게 만들었다. 글자는 몰랐어도 국어책만 펴면 그림만 보고도 멋지게 달은 시방 차꼬차꼬 우그로 막 올라갑니다 ……」 하던 광식이 -

그 광식이가 지금 25년전의 담임교사와 나란히 앉아 있지 않는가.

어디 그 뿐인가 돈만 걷는 날이면 100원을 가지고 오다가 상점에 들러 10원을 까먹고 90원만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김선생이 항상 돈을 세어보지 않고 걷는다는 것을 광식이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내라고 하면 얼른 10원짜리 아홉 개를 넣어버리고 가는 광식이, 그래서 항상 돈은 10원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김선생은 그것을 오래도록 모르고 있다가 1학년이 다 갈 무렵에야 늘 광식이가 그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학책값을 걷는 날이였다. 그날 만큼은 김선생은 꼭 확인해 보려고 돈 가져온 사람은 선생님의 책상에다 갖다 놓아라 했더니 광식이가 두리번거리며 동전을 갖다 놓고 갔었다. 얼른 한쪽으로 챙겨 세어봤더니 역시나 아홉 개 뿐이었다.

김선생은 형사라도 된 듯이 광식이를 날카롭게 불렀다.

, 90원이야

야무지고 말 많던 광식이가 할 말을 잃었다. 이번엔 같은 동네의 민구가 불쑥

선생님. 광식이는요. 오다가 10원 까먹었대요.

이번에는 경수가 벌떡

광식이는 항상 그랬어요

광식이의 모습이 그렇게 초조해진 적은 없었다.

지금 앞에 앉은 광식이가 선생님 제가 왜 사업가 기질이 있어요 하고 물을까봐 김선생은 담배를 끄고 일어서며

, 막차시간이 되었구나.하며 먼저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모처럼 써보는 꽁트가 교단 36년의 파노라마가 되어 오버랩되는 장면이 너무도 많아 가는 시간이 즐겁기만 했다 문학은 작자의 체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다더니 내 상상 또한 돌고 돌아 결국은 광식이를 만났던 얘기로 종결을 맺는가보다. 요즘의 교실안은 이런맛도 저런맛도 없다고 하니 아!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었구나 하며 이야기를 쓰고 말았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 <..>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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