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요즈음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보복운전 소식들이 필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는 자동차가 순식간에 흉기로 변할 수 있다니 섬뜩하기 그지없다. 보복운전은 자동차를 이용해, 고의로 특정인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다. 필자가 오늘, ‘보복운전을 차마 입에 담는 건, 남겨진 피해와 상처가 너무도 참담하고, 운전자 모두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탓이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다. 법치주의는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 원리, 헌법 원리다”(한국어 워키백과). 법치주의 사회에서 보복운전이 지탄받는 가장 큰 이유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출발된 명백한 범죄 행동이기 때문이다.

20073,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주인공은 한화그룹 김승현 회장. 차남이 시비 끝에 맞고 집으로 들어온 것에 격분한 그는 남자답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쇠파이프 등으로 직접 폭행에 나섰다. 이날 폭행 현장에는 김 회장이 자신의 경호원뿐만 아니라 폭력배까지 동원한 사실마저 밝혀지면서 파문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김 회장의 이 빗나간 부정(父情)과 욱하는 성질로 인해 그가 치룬 대가는 끔찍했다. 삼류 조폭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이 사건으로 김 회장은 단숨에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재계 총수로는 처음으로 폭력혐의로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구속자 신세도 면치 못했다. 기업 이미지 추락 등 한화가 입은 피해는 가늠조차 힘들 정도였다. 패가망신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사적 보복. 만약 이처럼 개별 구성원들이 법에 의하지 않고 직접 보복폭행에 나선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까? 또한 나쁜 운전습관을 고쳐주겠다며 저마다 보복운전을 일삼는다면, 도로 위는 어떻게 변할까? 국가의 근간인 사법질서는 여지없이 무너질 테고,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혼란한 세상이 되고 말 터. 중요한 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 못해 저지른 보복운전이 평생의 후회로 남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김 회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아픈 교훈이다.

자신의 화를 돋군 상대방 운전자를 응징하겠다며 보복운전에 나서는 순간,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운전자간의 사소한 시비가 그만 큰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복운전은 극한의 불안감을 주고, 사람의 목숨조차 앗아가기에 잔인하고 무서운 짓이다. 그런 까닭에 보복운전자는 평화로운 도로 위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악마로 불려도 싸다.

보복운전은 그 자체가 중대한 범죄다. 아무리 부아가 난다해도 자동차를 흉기처럼 사용해, 상대 방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공포감을 주는 행위가 어디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 필자가 보복운전을 주저 없이 악마의 범죄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용서받기 힘든 악마의 범죄인 보복운전을 전하는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필자의 속이 왜 이리 거북해지는 걸까? 물론 필자는 보복운전자를 변호하거나, 피해자에게 불편함을 줄 의도는 없다. 더구나 분노조절장애나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이 저지른 범죄마저 편들어줄 자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의 시각을 좀 더 넓혀, 근본적인 해결을 찾는데 한 걸음 나아가자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차분한 인식과 분석이 필요한 거다.

어떤 결과나 발생된 사건에는 반드시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 법이다. 원인들을 제대로 밝혀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허나 지금의 언론은 보복운전을 보도하면서 그 결과와 가해자의 잘못만을 들추는 것에만 급급해 한다. 진지하게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재발 방지를 위해 운전자끼리 지켜야할 예방법을 소개하는데도 인색하다.

무엇보다, 보복운전의 기저에는 운전대만 잡으면 이기적이고 조급해지는 운전습관이 깔려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운전자의 작은 실수나 단순한 주변 환경에도 과민하고 공격적으로 대응하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니 도로 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돼버렸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상대방 차량이 양보해주지 않을 때나,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들 때, 그리고 얌체운전을 하고도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을 때, 상대방 운전자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보복운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대부분의 보복운전은 잘못된 운전습관과 운전 중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럼으로 운전할 때, 인간의 기본예절인 미안함고마움을 잘 표현하기만 해도 도로 위의 평화는 지킬 수 있다. 넉넉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한다면 다툼이 일어날리 만무하다. 처벌만 강화한다고 보복운전이 해결될 리 없다. 선진 교통문화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앞서야 한다. 더 이상 도로 위에서 그 어떤 가해자나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 그들 모두에게도 가족들은 있을 테고, 누가 상한들 목메어 우는 사람은 나올 테니 말이다. 보복운전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 바로 그건 운전예절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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