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살림꾼

작년부터다. 여민동락공동체 마을가게 동락점빵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중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다. 인근 아이들이라 해봐야 뻔한데, 마을 아이들은 아니었다. 말수도 적고 몸집도 왜소했다. 그런데 뭐가 부끄러운지 쭈뼛쭈뼛 점빵을 기웃거리기 일쑤였다.

껌 하나 사는데도 표정이 힘들어 보였다. 군것질 하러 왔나본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눈치다. 그래서 어느 날엔 그냥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동전을 세고 있는 모습이 짠해서였다. 저 만할 땐 다들 먹고 일어서면 배고플 때 아닌가. 아이들에게 과자나 사탕은 누가 뭐라 해도 맛있기만 하다. 어른들이야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따져도, 아이들에겐 불량식품 간식거리가 유난히 입에 당기는 법, 집에 있는 애들 생각도 나고 해서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데 웬일인가. 어느 날부터 점빵 담당 공동체 식구가 재고가 안 맞는다고 울상이다. 처음엔 점빵이 언제부터 재고관리를 했냐며 시큰둥했다. 본래 동락점빵은 주인장이 없다. 입구에 종이 있어서 땡땡땡 종을 울려야 공동체 식구들 중 아무라도 달려가는 구조다. 그냥 들어가서 물건에 손을 댄들 불가항력이다. 가게라 해봐야 세 평 남짓이고, 손님이라 해봐야 그다지 분빌 처지가 아니다.

주인장 노릇 제대로 하려다, 오히려 인건비도 안 나온다. 오죽하면 이문이 남지 않는 마을가게라고 간판까지 그리 딱 걸어놨겠는가. 그래서다. 치부책 갖다 놓고 마을 주민들이 외상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아예 사람이 없을 땐 손님들이 물건 값을 놔두고 가는 일조차 빈번하다. 무인가게나 다를 바 없이 이웃 간의 신뢰가 운영철학의 바탕인 까닭이다. 그런대로 재미도 쏠쏠했다.

오시는 주민들마다 그나마 이런 점빵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당께. 여민동락이 잘하는 일이여 참말로.” 하시니 말이다. 객지에서 일보러 왔다가 가끔씩 지나시는 분들조차 딴 데서 살라다가도 여그 생각나서 일루 왔당께라우.” 하신다. 그만큼 제법 단골도 생겼다. 마을 어르신들은 게이트볼 장에서 노시다, 매 번 맥주 두 병 시켜 놓고 삼삼오오 목을 축이고 가시기도 한다. 시골 점빵 벌이야 예상대로 간당간당 하지만, 이처럼 사람들의 훈훈한 덕담이 돈보다 큰 응원이고 재산이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관리가 꼼꼼하질 않다. 재고가 맞을 리 없다. 그런데 점차 그 양이 많아지고, 비는 품목도 비슷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군것질 거리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얼추 짐작해보니 점빵을 기웃거리던 그 학생들이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의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돈으로 치면야 그게 또 얼마나 되겠냐 싶어 난감했다. 어릴 땐 이런 일 저런 일 있는 것 아닌가.

어린 시절 아버지 지갑에 손 한 번 대보지 않은 아이라면 어디 그럴싸한 추억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시골 구멍가게에서 캔디 하나 훔쳐보지 않은 유년기였다면, 그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없는 삶이었겠는가. 그래서 처음엔 적당히 눈치만 주면서 알아서 멈추길 기다렸다. 이런 걸로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아뿔사, 그런데 그게 벌써 1년이 다 돼버렸다.

식구들도 사뭇 심각해졌다. “어릴 때 한두 번 쯤이야 뭐..” 했다가 시간은 길어지고 횟수가 반복되니, “이게 교육적으로 맞나?”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심지어 담배까지 없어졌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점빵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해가 되고 있질 않은지, 고민이 컸다. 결국 공동체 회의를 소집했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현장을 덮쳐서 경찰서에 가는 것처럼? 부모에게 알려서 혼을 내? 가짜 CCTV를 달아? 등등.

그러나 CCTV니 경찰이니 하는 징벌적 방식은 답이 아니다. 신뢰가 깨진 마을, 저마다 이웃을 피의자로 낙인하는 문화는 치안사회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여민동락 방식으로 합의를 봤다. 그 누구도 맘을 다치지 않게 안내문을 붙이기로 했다. 선한 마음을 무작정 믿기로 한 것이다.

동락점빵의 주인장은 마을주민입니다. 물건 하나에도 주민들의 정이 담겨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외상을 하시고, 언제든 돈이 생길 때 느긋하고 당당하게 갚으면 됩니다. 동락점빵은 우리마을 어르신들을 존경하고,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CCTV가 없어도 재고가 딱 맞는 동락점빵! 그래서 마을협동조합인 동락점빵은 우리마을의 자랑입니다.’

우연일까. 그 아이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불쑥 사과하러 온단다. 그리고 그간 훔쳐간 목록을 적어서 물건 값을 갚겠단다. 어찌 동락점빵의 울상을 이해했을까. ..... 외상값 받는데 딱 1년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고 누구도 상처는 없다. 단지 외상이었을 뿐이다. 살 맛 나는 세상이다. 여민동락이 옳았다. 이웃간의 신뢰가 최고의 치안임을 확인한 날이다. 밀린 외상값 받는 날, 오늘은 무지 기분 좋은 날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한 턱 멋지게 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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