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전 영광효사랑노인복지센터장

지난 해 5,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부부가 교통사고로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났다. 덩달아 존 내쉬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영화 ‘A Beautiful Mind’도 다시금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그의 삶과 행적이 다시 한 번 재조명을 받는 이유다.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John Forbes Nash. 내쉬는 22살 때 게임이론의 백미인 균형이론이라는 논문을 발표, 하루아침에 경제학계를 뒤흔든 스타로 떠올랐다. 27쪽짜리 논문이 디딤돌이 되어 그는 19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위대한 지성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정신분열증에 맞서 싸웠고 이혼과 노숙생활, 아내와 재결합이라는 풍파를 겪어야 했다.

‘A Beautiful Mind’에는 이런 내쉬의 성공과 불운, 그리고 부인 얼리샤의 헌신적인 내조 덕분에 행복을 찾아가는 그의 생애가 잔잔히 담겨있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에서 4개 부문을 휩쓴 까닭도, 아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내쉬의 삶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내쉬가 고안한 균형이론이란 건 뭘까? 이화여대 김상택 교수는 경쟁자가 이렇게 대응할 줄 알았으면 나도 바꿀 거고, 내가 바꾸면 상대방이 또 바꾸고, 그렇게 하다보면 지금이 최선이다. 더는 바꾸지 않겠다라는 상태가 균형이론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영화 속에서는 내쉬와 그의 친구들이 금발의 미녀를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이려는 장면을 통해 균형이론을 재미있게 소개했다. “금발 미녀를 향하여 우리 모두가 대시를 하면, 다 차이거나 한 명만 선택될 뿐이다. 그렇다고 금발 대신 그녀의 친구들에게 달려 들어봐야 역시 거절당할 뿐이지. 왜냐면 자신들이 꿩 대신 닭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 이미 기분이 상해버렸기 때문이야. 따라서 처음부터 우리가 금발에 가지 않고 각자 그녀의 친구들에게 다가가면 서로 싸울 필요도 없고, 모두가 즐거울 수가 있어.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내쉬의 주장은 어차피 모두에게 최선이 될 수 없다면 차선을 택하자는 합리성에 그 근거를 둔다.

내쉬를 천재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균형이론으로 경제학의 아버지인 Adam Smith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든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경제적인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최고로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다.”라는 Adam Smith의 말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틀렸다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 선택보다 집단 내의 모든 구성원들의 협심과 공동의 노력이 보다 중요하다는 게 내쉬의 생각이었다. 전체의 이익은 경쟁과 대립보다 신뢰와 협력을 기초로 상호작용할 때 더 쉽게 실현된다는 내쉬의 말은 당시 경제학계에 파란을 일으키기기 충분했다.

균형이론이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건, 불합리하고 비협력적인 선택이 모두를 파탄시키거나 손해를 끼치는 사례를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믿지 못해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와 같은 치킨게임도 도처에 흔하다. 가격 경쟁에 열을 올린 나머지 결국 함께 망해 버린 두 곳의 상점. 지나친 군비경쟁으로 세계 평화를 깨뜨린 냉전시대 때의 미국과 소련. 2위와 3위를 달리는 선거 후보자가 단일화에 실패해 둘 다 패자가 된 정치인들.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다투는 바람에 물속에 풍덩 빠져버린 이솝 우화의 염소 두 마리.

반면 균형이론을 잘 활용함으로써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도 숱하다. 서로 존중하고 조금씩 양보한 결과,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을 몰고 온 8월의 남북고위급 회담. 노사의 협력적 대화로 임금협상을 타결한 사업장.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히 펼쳐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 기업체. 사은품 제공이나 할인 행사로 고객을 유치하는 대형마트 등이 그 예다.

내쉬는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쪽은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생과 윈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였다. 노벨상을 받은 내쉬가 부인을 향해 던진 수상소감은 청중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전 소중한 걸 발견했어요. 어떤 논리나 이성도 풀 수 없는 사랑의 신비한 방정식 말입니다. 당신 덕분에 난 오늘 밤 이 자리에서 섰어요.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모든 존재의 이유예요.” 그가 균형이론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알 듯 싶다. 행복은 모두의 협력과 신뢰에서 비롯되고, 그 바탕엔 반드시 사랑이 깔려야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난원과 같은 재단인 영광기독병원감사합니다 · 사랑합니다라는 이름의 운동을 병원과 지역사회 속에서 펼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문득 재미있는 상상이 머리를 스친다. 만약, 내쉬가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한 번쯤은 진료를 받고자 자신과 생각이 똑같은 영광기독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내쉬나 영광기독병원이나 사랑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니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가장 큰 힘이다.

이글은 필자가 의료법인 거명의료재단 소식지인빨래터2015년 가을호에 실은 기고문을 일부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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