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성(1)-서경덕, 이지함, 제논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자와 돈, 철학자와 권력, 철학자의 외모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철학자들의 성() 생활은 어땠을까? 그 이름만큼이나 거룩하고 근엄하고 건전했을까? 아니면 자유분방했을까? 이 역시 철학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먼저 매우 건전한 경우, 즉 성욕을 잘 절제하였던 철학자들이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황진이와의 사랑으로 잘 알려진 화담 서경덕(14891546, 조선 중기의 유학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화담을 존경해 마지않았는데, 그것은 그의 학문상 업적보다도 고결한 성품 때문이었다. 황진이가 화담을 여러 번 유혹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개성 출신의 명기 황진이는 원래 진사의 서녀(庶女-첩이 낳은 딸)로 태어났는데, 사서삼경과 시서, 음률에 모두 뛰어났으며 특히 용모가 매우 빼어났다. 열다섯 살 무렵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자 기계(妓界-기녀의 세계)에 뛰어들어 탁월한 시재(詩才-시를 잘 짓는 재능)와 미모로 많은 문인들을 매혹하였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던 천마산의 지족선사를 정욕으로 유혹하여 파계시키기까지 하였다.

이어 당대의 대학자인 화담을 유혹하기 위해 어느 비 오는 날, 얇은 가사(袈裟) 옷을 걸치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빗물에 흠뻑 젖은 옷이 아리따운 몸에 착 달라붙어 그야말로 그녀의 육체는 맨몸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온갖 교태를 부리며 화담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는 끝내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황진이가 말하기를 지족 선사는 나의 농락으로 하룻밤 사이에 전공(前功-전에 세운 공로나 공적)이 허물어졌다. 그러나 내가 화담 선생을 가까이 한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그분의 마음과 몸을 어지럽히지 못하였다. 참으로 성인(聖人)이시로다!”고 하였다. 이후 개성사람들은 황진이와 박연폭포, 화담을 묶어 송도삼절(松都三絶-송도, 즉 개성의 세 가지 뛰어난 존재)’이라 불렀던 것이다.

토정 이지함(1517~1578, 조선 중기의 학자)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 바 있다. 키가 크고 건장한 데다 풍채가 좋은 그가 개성으로 서경덕을 찾아갔다가 어느 여인네의 유혹을 이겨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이 일로 인하여 당대에 으뜸가는 스승(서경덕)에게까지 인정을 받았는데, 만일 일이 거꾸로 되었다면 어땠을까? , 토정이 그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정욕에 몸을 맡겼다면, 과연 그 이후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그 여인의 남편으로부터 몰매를 맞고 스승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영원한 멸시를 받았을까? 아니면 그 일 때문에 도리어 우리에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제공했을까?

서양철학자 중에도 뛰어난 절제력을 보인 철학자가 있다. 스토아학파(금욕주의)의 창시자 제논은 그 첫 번째에 해당될 것 같다. 그는 성격 자체도 지나칠 정도로 수줍음을 타서 자신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먹고 마실 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경우에도 절제하거나 삼갔고, 요령껏 잔치를 피해 다녔다. 좋아하는 음식은 녹색 무화과와 빵, 벌꿀이었고 여기에 한 잔의 포도주(서양인들의 식탁에는 으레 포도주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한 잔이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를 곁들여 마셨다. 그리고 한두 번 창녀와 교제를 했는데, 마지막 교제는 다만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로 보이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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