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 논설위원, 행정학박사

지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여당 새누리당의 오만에 대한 국민의 무서운 심판이었다.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야권 분열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을 수 있다는 위대한 착각과 안일한 오만으로 300석 의식에서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122석을 얻고, 123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에 제1당의 자리를 내주는 참패와 수모를 당했다.

야권 분열이라는 유리한 구조적인 조건 아래에서 과반은 따놓은 당상(堂上)이요, 최대 180석까지도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분석을 내놓던 새누리당 지도부는 너무나 예상 밖의 선거 결과에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충격도 내상(內傷)이 깊은 너무 큰 충격이다.

친노(親盧) 패권주의의 배타적 폐쇄성과 문재인 대표의 무책임한 당 운영으로 탈당 사태를 부르고,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출신 김종인 씨를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대책위원회 대표로 모셔온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으로 제1당이 되었으나 마냥 웃을 수만도 없게 되었다. 전통 야당의 심장인 광주에서 전패(全敗)하고 그 텃밭인 호남에서 전패하다시피한 더불어민주당은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언제 고사(枯死)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정당이 되었다. 김종인 대표의 ‘바지 사장’ 논의와 비례대표 2번과 14번을 오르내리는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싫어하고, 국민의당에서 지지할 마땅한 지역구 후보가 없어서 뜻밖의 수확을 거둔 것이 더블어민주당이다.

옥새(당대표 직인) 들고 부산으로 피난 간 김무성 대표와 옥새를 뺏으려고 뒤쫓아간 원유철 원내대표의 행태,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관철하고자 ‘배신자’로 낙인찍어서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직접 선출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쫓아내고, 공천을 주지 않으려고 끝까지 끌면서 약 올리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 놀음에 국민들은 두 손 들고 질려버렸다. 130석의 거대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제 밥값을 못하고 국회 본관 계단에 도열해서 카드 들고 구호나 외치면서 정부 여당의 잘못된 정책을 반대하는 시늉이나 하면 안전 빵으로 국회의원 배지 다시 달고 대접받는 안일한 의식과 습속(習俗)에 젖어 있었다. 진짜 야당 역할을 포기한 한심한 통과의례였다.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할 때 야당이 밥값을 조금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한 꽃놀이판 속에 있다가 창당(2월 2일)한지 70일 밖에 안되는 국민의당에게 텃밭인 호남을 빼앗기고,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에게 패배하는 회초리를 얻어 맞았다. 김종인 대표의 자평(自評)처럼 더불어민주당의 ‘호남에서의 참패는 인과응보’다. 인과응보(因果應報)란 자기가 원인을 지어서 자기가 그 결과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창당하면서 바로 선거 체제로 돌입한 국민의당은 체제도, 조직도, 인물(후보)도 미약한 상태에서 20석 국회 원내 교섭단체만 구성해도 다행이었는데, 뜻밖의 돌풍을 일으켰다. 광주와 호남에서 불기 시작한 녹색 바람은 강력한 태풍은 되지 못했지만, 수도권에서 더민주당을 앞서는 정당 지지를 끌어냈다. 탄탄한 지역기반을 확보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국민에게서 불신임 받은 새누리당과 지역기반이 없는 불안한 더불어민주당 사이에서 확실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수 있고, 내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서도 당당한 유력 후보로서 부상했다. 이번 총선 후에 꽃놀이패를 쥔 사람은 안철수 대표뿐이라는 분석이 있다. 김무성 전 대표도, 오세훈 씨도, 김문수 씨도 코가 석자가 되어 버렸고, 반기문 총장은 현실 정치 속으로 들어오면 간단치 않은 검증 절차와 추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아직은 구름 위에 있는 예상 후보일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배우고 얻은 교훈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정치인들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불리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읍소(泣訴)하고 엎드려 절하는 정치쇼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진정성이 없는 정치쇼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정치쇼나 하는 70년대식 구태(舊態) 정치인은 정치권에서 영원히 퇴출되어야 한다. 국민을 뭘로 보고 지금까지도 선거 때만 되면 역겨운 그 짓거리들인가.

둘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권력을 가졌다고 국민을 무시하고 속이려고 잔꾀를 부리고 말을 바꾸면 더 이상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권력자의 오만함에 분노하고 저항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번 선거 하루 전에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국정을 발목 잡는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런데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의 다수당 새누리당의 오만과 정치쇼를 심판했다.

셋째, 수십 년 헌정사에서 막대기만 꽂아 놓아도 당선되는 기막힌 한국적 지역주의를 깨버렸다. 기형적(奇型的)인 지역주의는 망국적인 고질병(固疾病)이다. 외세(당)를 끌어들인 신라의 잘못으로 광활한 만주벌판과 평양까지 포함한 고구려 땅을 잃고 반도로 물러앉은 땅이 70년 동안 남북으로 두 동강나고, 그것도 부족해서 남쪽은 동서로 나누어서 갈등과 대립을 일삼았던 슬픈 역사의 굴레를 박차고 깨버리는 선거혁명이었다. 정당성이 취약한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이 국민을 ‘분할해서 통치’(divided and control)하는 권력 놀음에 국민들이 희생되었다. 이번 총선은 밝고 희망찬 새 역사의 서막(序幕)을 활짝 열어젖힌 놀라운 정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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