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10년전 일이다. 2007년 성역으로 여겨졌던 삼성 내부 비리를 세상에 고발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람이 있었다. 변호사 김용철.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미래전략실) 법무팀장이었던 그의 양심 고백으로 삼성의 로비 실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김용철을 통해 알려진 삼성의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 축적,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 등에 대한 체계적인 뇌물 공여와 거미줄처럼 뻗친 로비망은 상상 그 이상이다. 삼성의 로비실태와 유착관계는 이미 2005년 이른바 ‘X파일 사건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당시 ‘X파일 녹취록에는 삼성이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 측에 100억원의 정치 자금 전달, 현직 검사 7명에게 명절 떡값을 돌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용철의 양심고백이나 ‘X파일 사건모두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하고 결국 코끼리 코만 만지는격에 그치고 말았다. 삼성의 힘은 그만큼 막강했고 검찰, 언론 등 삼성 비호 카르텔 또한 견고했다. 김용철은 양심고백서인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당시 삼성을 의식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이 책의 광고 게재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미군단의 소비자운동 덕분에 15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국내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해외 언론의 반응은 컸다. <뉴욕타임즈>책 한 권이 대한민국을 갈라 놓았다고 썼다.

삼성공화국에서 보수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민주정부라고 해도 그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죽하면 노무현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의 논문을 국정 계획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허다했겠는가. 김용철은 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삼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관료조직, 검찰조직, 언론조직 구석구석에 삼성의 촉수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검찰조직의 인맥 관리를 담당했던 김용철은 법을 발톱에 낀 때 만큼도 여기지 않는 삼성 인사들의 인식에 아연실색하고 불법과 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생리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오늘날 삼성을 말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을 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기각을 보더라도 대한민국이 10년 전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수백만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도, 최순실 게이트 수사의 모든 정황과 증거들이 삼성의 뇌물수수를 입증하고 있어도, 여전히 삼성이라는 권력의 힘은 막강했다. 권력의 사유화와 부정 축재, 공공성 파괴는 시장권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휘두르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민낯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삼성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1%의 부자들로부터 나온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부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무자비하다.

6월 항쟁 이후 정치 민주화가 시급하기 때문에 유보된 경제 민주화. 그 유보의 세월이 가져온 비극은 엄청났다. 비정규직과 빈곤의 확산, 세계 자살율 1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 누가 감히 민주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먹고 사는 문제에서 도덕과 정의를 세우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때문에 프랑스의 학자 발리바르도 말했듯이 충분히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에서 반민주적이다.

정치엘리트들과 재벌, 관료로 이어지는 커넥션을 끊어내고 자본에 종속된 권력이라는 신자유주의 시대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촛불 혁명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목표이자 차기 대통령이 보여줄 정치 리더십의 첫 번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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