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요즘 격변하는 정세를 보면서 현기증을 느낀다. 이권을 따라 이합집산은 보통이고 체면을 가리지 않으며 말 뒤집기는 기본이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인 정치철학은 눈곱만큼도 찾을 길이 없다. 신뢰도 없고 정의도 없다. 좋은 것은 아무것도 갖추지 않았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법조인 출신들은 전공을 살려 오히려 나쁜 짓 하기에 바쁘다. 양심 있는 정치인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야할 판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성어가 있다. 직역은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로 되고 사전에서는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음으로 나온다. 뻔뻔스럽기 위해서는 얼굴이 두터워야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정치인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요즘의 일이 아니다. 과거 대다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위주로 살펴봐도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대동소이하다. 최근 미국의 오바마처럼 박수를 받으며 떠난 대통령은 없다. 일부 가짜 보수들이 국부로 숭앙하는 이승만은 국민에 의해 대통령직을 물러나며 이완용. 송병준. 이병도와 함께 4역도로 낙인이 찍혔다.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잃은 나라를 찾기도 전에 다시 팔아버렸다.”고 했다. 여기에 이병도는 한 술 더해 황국사관으로 나라의 혼까지 팔아버렸다. 개인의 명예욕과 영달은 국가의 가치를 넘어선다.

박정희는 혈서로 일본에 충성을 맹세한 대가로 일본군 장교가 되어 만주에서 독립군과 대치했고 해방 후에는 남로당 사회주의에 영합해 김일성을 지향했다. 이른바 원조 종북 대통령이다. 자기 백성의 밥그릇 크기까지 줄여가며 노동력을 착취한 결과로 이룬 경제성장을 순전히 자신의 공으로 돌리며 치부를 했고 아직도 그 재산은 사학과 재단에 모습을 감추고 숨겨져 있다. 최규하는 바지 사장이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국민의 힘으로 일군 5.186월 항쟁의 결과를 군화발로 짓밟아 민주주의 초석을 다시 파버렸다.

김영삼은 삼당합당과 지역주의를 조장하여 민족의 동서 분열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국가를 IMF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국민연금은 깡통계좌가 되었고 불쌍한 58년 개띠를 중심으로 수많은 가장들이 무너져 내렸다. 여기에 아들의 전횡까지 더해지고 하루가 멀게 터지는 대형 사고는 차라리 체념이었다.

김대중은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내 몰았던 국가보안법을 손도 못 대고 임기를 마쳤고, 탱크로 국민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해 치부의 수단으로 삼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하는 우를 범했다. 과연 노벨 평화상이라는 당근이 없어도 그랬을까. 그래서 분노하던 국민은 밴댕이가 되었고 자신은 오지랖 넓은 군자가 되었다. 그래도 분노하는 밴댕이가 솔직하다. 그도 아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오점으로 남았다.

노무현은 가신세력도 패권세력도 없는 힘없는 대통령이었지만 소신 있는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다. 철학도 있었다. 하지만 세습재벌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 그리고 모든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신제가를 못했던 죄는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 이명박은 자원외교와 4대강 및 원자력건설 등의 통 큰 사업으로 국민 대다수의 빈축과 원성을 샀지만 두꺼운 얼굴의 모범을 보이며 아직도 떳떳하기만 하다. 여기서 박근혜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의 측근과 추종자들의 후안무치는 대통령을 훨씬 능가한다. 김문수는 양심을 팔며 블랙 코미디를, 김진태는 자신이 속인자들 사이에서 영웅놀이를 하고 있다. 후안무치의 모범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신은 뒤로 숨고 신도들의 맹목적 신앙심을 부추겨 자칭 보수 애국자들 놀음에 참가시키고 있으니 또한 후안무치이다.

정치를 하려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하고, 다소 무지하고(무식이 아님) 도대체 체면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식을 욕심으로 발효시켜 곰삭은 권력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아이들이 배울 것은 참살이가 아닌 교활이요 무치이다. 특히 요즘의 정가는 후안무치의 경연장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길은 더 큰 관심과 밝은 눈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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