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하루 종일 방송에선 박근혜 탄핵과 파면을 내 보내고 있다. 그만큼 역사적 사건이었다. 헌정사상 대통령 파면은 처음이다. 임시정부 당시 이승만 탄핵과 얼마 전 노무현 탄핵이 있긴 했지만 파면까지 가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의 헌법 유린은 그만큼 심각했다. 본인과 측근만 심각성을 몰랐던 것일까.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기각을 믿으며 5단 축하 케이크까지 준비 했었다는 후문이다. 이정도면 상황판능력 제로이다.

이러한 문제는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추종자(그들 방식대로 부르면 패권주의)들은 여왕을 만들어 구중궁궐에 안치하고 정권의 단물을 나누어 먹었다. 힘이 필요하면 무지한 대통령을 내세워 권력의 창을 휘둘렀고 결과물은 적당히 나누어졌다. 이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바로 단소리였다. 충고를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그녀는 단소리꾼에게 큰 신뢰로 답했고 신뢰는 금계란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자 추종자들은 풍비박산으로 화답했다. 일부는 우리는 다르다며 편을 갈라 나가버렸고 일부는 눈치를 보다 그래도 아직은 바닥에 남은 유신 향수의 보수층을 기대하며 남았다. 나경원은 반기문 특수를 기대하며 없던 소신까지 버리고 약속을 깨고 남았다가 반기문이 갑자기 하차하자 얼굴 두껍게 바람난 남편을 빗대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김문수는 노골적으로 불과 두 달 전에 했던 탄핵 지지를 뒤엎고 반대의 태극기 부대에 합류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에겐 국익을 떠나 이권의 자리가 필요하다.

권력이라는 단물이 말라버리면 주위의 추종자 행동양식이 바뀐다. 진심을 가장하던 단소리는 과장된 행동으로 나타나고 위기에 몰린 권력체를 이용해 자신을 홍보하고 알려 상품가치를 올리는데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번 탄핵 사건에서 김진태, 윤상현, 이우현, 조원진, 박대출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진태는 탄핵 반대 10% 국민에게 구국 영웅이 되었고 가장 유명한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자신의 이권을 위한 추종 대상이 몰락하자 재빠르게 방향을 바꿔 바닥의 맹목 보수를 이용, 언론의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교우관계나 직장, 정치판에서 몰염치와 교활이 판치는 이유이다.

이번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는 한술 더 뜬다. 이들에게 처음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없었다. 단지 큰 기회로 다가온 자신들의 홍보 의지만 있었고 목적을 위해 별별 퍼포먼스를 벌였다. 서석구와 김평우는 재판관들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언행은 거침이 없었고 애초에 법리 공방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단지 절차상의 하자만 따졌다. 일찌감치 승소는 목적이 아니었고 전 국민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상식 밖의 장소에서 마이크를 잡고 상식 밖의 발언을, 상식 없는 욕을 섞어 전국으로 내 보냈다. 박 전 대통령 최대의 적은 내부 조력자였던 셈이다. 그래서 재정비한 변호인단에서 이들은 제외되었다. 쓴소리를 배제하는 사람에겐 권력의 단물이 마르면 주위에 사람이 없기 마련이다. 결국 남는 것은 배신이다.

지방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출직 수장은 순식간에 단소리에 휩싸인다. 쓴소리를 해서 들어주면 좋지만 기분 상하게 해서 좋을 일은 없기 때문에 직언을 할 주변인은 없다. 그래서 리더는 자신의 과오를 전혀 모른다. 여기에 권력으로 얻은 자신감까지 더해지면 결과는 불통이다. 쓴 약은 몸에 좋고 단것은 해롭다는 사실을 알지만 행하지는 않는다. 주위의 감언(甘言)으로 인한 나는 잘한다.’는 착각 때문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감언신뢰로 주저앉았다. 주위에 쓴소리꾼이 없으면 지금은 좋지만 내일이 없다. 행정은 독단적으로 흐르고 인사는 헝클어지며 퇴임 후에도 주위에 사람이 남지 않는다. 단소리로 이익만을 추구하는 무리가 장막을 치고 아집과 오만의 리더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4년 혹은 5년 비정규직을 맡으면서 남은 여생을 망칠 필요는 없다. 감언을 즐기면 필망이요 고언을 가까이 하면 덕이 쌓인다. 감언과 교언영색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만 삼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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