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는 성폭력은?

*/ 영광읍 도동리(평화확립상)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통해 그 날의 사건 사고를 확인하는 것이 나의 일과 중 하나이다.

뉴스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 중 가장 귀를 기울이게 하면서도 눈을 찌푸리게 하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뉴스는 단연 성폭력 사건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사건은 특히나 더 듣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거의 매일 뉴스를 통해 소식이 들려오는 듯 하다.

얼마 전 고등학생 22명이 여중생 2명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5년 만에 밝혀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피해자들의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5년 동안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피해자들이 어느정도 심리적 안정을 찾자 경찰의 긴 설득 끝에 신고했다고 하니 그동안 피해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또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고 아파왔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아이들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준 가족들과 경찰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힘든 상황에서도 용기를 낸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어린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에 대한 가슴 아픔과 그러한 아이들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어른들에 대한 감사함, 용기를 낸 아이들에 대한 대견함까지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를 절망과 분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은 이후에 발생한 일 때문이었다.

한 언론에서 22명의 가해자들 중 일부 가해자 부모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너무나 쉽게 내 뱉는 게 아닌가.

귀하게 키운 내 자식이 현재의 일도 아닌 5년 전 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인생을 망칠 것을 생각하니 부모 된 입장에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화가 나 모든 책임을 내 자식이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내 자식이 다른 집 자식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아무리 눈앞이 캄캄해지고 내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해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아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진정한 부모의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걸 왜 모르는가? 피해자들의 부모 또한 금지옥엽 키우며 그 또래 아이들처럼 공부하며 꿈을 키워나가며 티없이 자라나길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타인의 성적인 욕구 혹은 호기심 때문에 그 가족과 아이의 5년의 시간이 고통 속에 사라져 버렸고 이후로도 얼마나 고통 받을지 치유된다 할지라도 일상 속에서, 머릿속에서, 관계 속에서 왕왕 나타나 힘들게 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성폭력 사건은 이처럼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상처를 안기게 되는 매우 중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성폭력 사건 발생 이후 성폭력 사건의 책임성에 있어 오롯이 가해자에게 찾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찾게 됨으로써 2차 피해가 발생하고 또 여성혐오 대 남성혐오로 파장이 튀는 왜곡된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성폭력 범죄는 왜 용납되어서 안 되는지, 왜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차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본질적인 탐구와 토론보다는 대립적 이슈로 변질된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성폭력이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러한 폐단들이 일어나는 건 왜일까? 사회적 문화, 가정 교육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배우는 성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성교육을 하는 것 자체도 많지 않았지만 몇 번 되지 않는 성교육의 내용이 어찌나 황당하고 어의없던 내용이었는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낙태동영상을 보여주며 나를 포함한 여자 친구들에게 순결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며 순결서약서를 받았고 그게 내가 받았던 성교육의 전부였다. 그때 들었던 의문은 왜 남학생들에게는 순결서약서를 받지 않는가? 순결은 여성만 지켜야 하는 것이며 임신은 여성의 책임인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상 불편한 마음을 억누른 채 누구하나 심경을 드러내지는 못하였었다.

씁쓸했던 성교육을 경험한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기에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성교육은 분명 내가 배운 성교육과는 다를 것이라고 확신하고 기대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한 언론이 최근 성교육을 받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바 낯선 사람이 접근했을 때 분명히 의사표현을 해라, 성관계 하지 말아라. 임신하면 인생 망친다.’ 등 내가 배운 성교육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교육부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수업 시 사용을 위해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는 참을 수 없고, 성폭력의 예방법이 이성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지 않는다등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 해 양성평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까지 심어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 있어 수정, 보완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다니 실소를 금할길이 없다.

폭력 예방 교육은 어떤 이유에서도 절대 가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함에도 여전히 우리의 성교육들을 들여다보면 피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해자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리고 실제 성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순식간에 피해자가 꽃뱀으로 몰려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가해자가 말도 안 되는 형량을 받기도 하며, 무죄를 받기도 한다.

성폭력은 나와는 혹은 내 자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저 위 사건의 부모들도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거라고 생각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사고들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성폭력의 피해자도 혹은 가해자도 될 수 있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아이들에게 성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면 이제는 이러한 성교육은 멈춰야 한다. 순결을 지키고 임신하면 인생 망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신과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통합적 인권교육이 학교와 가정, 사회 등 구성원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에서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영광여성의 전화가 주최한 세계여성 폭력 추방 주간 맞이 글짓기공모전의 입상작품으로 실명과 사진은 글쓴이의 요청으로 인해 게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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