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옛날부터 영광에서는 호구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번창했고 행정구역이 넓었다. 함평, 무장은 물론 장성과 고창의 일부, 위도까지 모두 영광 땅이었다. 나주 영산포와 영광 법성포에 조창이 있었던 관계로 두 고장은 남도의 중심지였고 법성포는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라는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다. 영광읍성과 법성진성은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무장성과 함께 지역의 상징이었다. 무장성은 현재 복원중이지만 영광의 두 성은 여건상 복원이 요원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번성했던 고장이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는 빈약하다. 이웃 지자체에서 한옥을 이용해 펜션이나 문화시설을 확충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절간 입구까지 초현대식 힐링 센터가 들어서고 보존해야할 건물들은 모두 흔적까지 없어져 버렸다. 순창은 벌써 오래전에 한옥으로 마을을 조성해 전통 고추장을 팔고 있으며, 곡성은 곡성심청한옥 펜션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광주시 서구 세하동에 건립된 서창향토문화마을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좋은 문화적 콘텐츠를 마련했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인 문화 프로그램을 얹으니 금상첨화다. 며칠 전 다녀온 하동 평사리의 토지 촬영지와 박경리 기념관은 아름다운 한옥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조성 되어 있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요즘 신축 문화관련 건물들은 한옥 형태로 많이 지어진다. 전통은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요 뭔가 편함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최근 지어진 백제불교 도래지도 처음 설계는 한옥 형이었다. 조감도를 보고 아름다움에 기대가 컸지만 결과물은 인도 남방식 건물이라는 현재의 모습이다. 당시 우리 건축 양식이 이렇지는 않았지만 마라난타의 고향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렇게 설계를 바꾼듯하다. 아무튼 우리 것은 아니다. 묘량면 삼효리에 전통문화마을이 있다. 전통은 돌담 외에는 남지 않았지만 붙여진 이름은 전통이다. 길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을 했고 동네를 가로지르며 흐르던 빨래터 냇가는 모두 복개해 버렸다. 동네를 대표했던 초가는 한 채도 남지 않았고 전통말살 마을이 되었지만 이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이곳에 지어진 체험관도 처음 설계는 한옥 형식이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현대식 싸구려 숙소 형식으로 변했다. 동네 위원회는 문화원으로, 문화원은 동네 위원회로 책임을 전가했다. 새로 지어진 화장실도 현대식이고 연자방아는 형태만 만들어 놓아 돌지 않는다.

옛날 건축물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긴 마찬가지다. 현재 우체국 앞 큰길 홍문(虹門) 위에 지어져 위용을 뽐내던 진남루는 1920년 일제의 도로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헐려버렸다. 이후 복원할 생각도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고 기록만 남아있다. 어려서 보고 자랐던 군청의 운금정은 군청 신축공사를 하면서 헐렸고 읍사무소 당직실로 사용했던 객사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말았다. 운금정의 기문은 수은 강항 선생이 썼다. 모두 아름다운 전통 한옥이었다. 보존할 의지도 전통의 귀함도 없었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대국민 노동착취운동이 벌어지면서 함께 사라진 건물도 많지만 관공서를 신축하면서 없애버린 전통 건물도 몇 채나 있었던 것이다.

영광 곳곳에 세워진 시정과 누각에 이름이 없다가 그나마 요즘 이름이 지어져 현판이 걸렸다. 다행이다. 지역에 유능한 서예가들이 있는데 누각에 이름도 걸어주지 못했다는 것은 행정의 무관심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걸린 현판이 수준 이하의 글씨로 새겨진 곳이 있음은 군 전체의 부끄러움이다. 바로 교체해야 하지만 정작 공무원들이 서격(書格)을 모르니 관계자들은 심각하지 않다.

군에서 운영하는 전시관이나 홍보관, 특산품 판매장 등을 한옥으로 지으면 어떨까. 모양만 한옥 형태의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전통 한옥을 지어 운영한다면 영광의 이미지 고양에도 좋고 정서에도 좋을 것 같다. 이웃 고창도 예술회관 일대를 한옥으로 조성하고 있다. 모방하자는 것이 아니라 요즘 대세이기도 하고 영광의 옛 전통을 살려 보자는 의미에서도 좋지 않을까.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