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햇살이 따스한 봄날, 한가로운 오후의 정적을 깨는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여민동락 건너편 영당 마을에 사는 생실 양반 이웅신 어르신(87)이다.

여그, 영당인디,,, 내가 시금치를 쪼까 심었는디, 내 혼자는 묵을 일이 읎어. 여그 파도 있고 신선초도 있응께, 지금 해다 안 먹으면 뻐셔져서 안 되니께. 와서 해 가라고 전화 혔어. 아무 때나 와서 해 가랑께. 우리 밭 알제? 나가 집에 없더라도 와서 해가꼬 가. 알았제?”

어르신은 여민동락의 농사 스승이다. 농촌에 들어와 살겠다는 뱃심만 있을 뿐, 평생 상추잎 하나 키워본 적 없고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교과서가 되어 주신 분이다. 작은 텃밭이라도 제 손으로 직접 일궈본 사람들은 잘 안다. 농사 정말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 밭농사는 밭농사대로 힘들고 논농사는 논농사대로 힘들다. 도시 사람들이 시쳇말로 나중에 먹고 살 거 없으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짓지 뭐라고들 하지만 큰일날 소리다. 농사 지어서 벌어 먹고 살겠다고 덜컥 내려왔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농사만큼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직종이 없다. 땅의 기운을 읽고 하늘과 바람의 움직임을 헤아려 파종과 키움과 수확의 적기를 판단하는 것, 이것은 지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삶의 지혜에 속한다. 게다가 이러한 통찰력과 지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키워내는 끈기는 한두해에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르신들은 소농으로 논밭을 일구면서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평생을 농사에 바쳐온 전사들이다. 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변화속에서도 묵묵히 땅을 일구며 세월의 무게가 만들어 낸 지적, 문화적 유산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수십년간 농사 외길을 걸어오신 어르신들께 농사문화재라는 배지를 만들어 달아드리고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여민동락의 농사 스승 생실 양반은 초보 농사꾼들의 얼치기 농사에 아무런 대가 없이 당신의 지혜를 전수해 주셨고 몸소 시범을 보여주셨다. 지금도 당신은 나이를 솔찬히 먹어부러서더 이상 농사는 못 짓겠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꾸준히 땅을 일구신다. 땅을 놀릴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해 짓고 거기서 나온 수확물은 나눈다. 나누기 위해서 짓는 것인지, 짓다 보니 나누는 것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짓고 나누는 것이 일상인 어르신의 삶이다.

봄이 되니 여민동락 곳간도 풍성해진다. 주간보호에 오시는 어르신들마다 빈손으로 오시는 분들이 드물다. 검정 봉다리들을 들고 오시는 어르신들의 손에는 상추, 머위, 시래기, 무청, 신선초, 시금치, 봄동 등 각종 푸성귀들이 실려 있다. 연세가 많고 거동이 다소 불편한 몸으로도 절대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는 어르신들. 가져 오시면서도 너무 조금이라 보잘 것 없다며 수줍게 봉투를 내미는 어르신들의 손이 사랑스럽다.

가진 재산도 없고 국고보조도 받지 않는 시골의 조그마한 시설이 어떻게 운영될 수 있냐며 의아해 하는 분들이 아직 있다. 비결은 나눔이다.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을 그냥 나누는 것이다. 어르신들과 마을 주민들의 나눔이 여민동락 생명력의 근원이다. 나눔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나눔은 자립적 복지의 근간이다. 나눔은 이웃간의 연대와 협력이다. 나눔은 각자도생이 아닌 우애하고 공생하는 삶을 만든다. 나눔은 국가복지의 한계를 넘어 주민들 스스로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마을복지를 작동하게 만드는 윤활류다.

생실 양반 텃밭에 시금치 캐러 가야겠다. 다시 봄이다. 여민동락의 봄은 나눔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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