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우리 정신 중심에는 사서삼경과 공자 사상이 있다. 영광의 석학 정종 박사는 공자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펴 보고자 평생의 절반 이상을 관직 구걸에 바쳤다. 그래서 중국의 큰 학자 리링(李零)은 그의 강의를 책으로 엮어 제목을 집 잃은 개(喪家狗)’로 잡았다. 바로 공자를 이르는 말이다. 이른바 요즘 말로 돌아갈 집이 없는 개, 홈리스(homeless)라고 불렀다. 하지만 긴 세월을 거치며 그의 언행과 유적은 윤색되고 각색되어 다시 태어났다. 본인도 ()이나 인()을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권력자를 비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치에 심기위해 세상을 떠돌다 어느 날 제자들을 놓쳐 혼자가 되었다. 홀로 외성 밖에서 제자들을 기다리던 그의 모습을 집 잃은 개처럼 풀 죽은 사람이라고 길 가던 백성은 표현한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담담하게 인정했다. 그렇다고 그의 사상을 부정하거나 폄하할 마음은 없다. 여전히 그는 성인이요 위대하다. 그래서 2500년을 살아남은 것이다.

공자와 거의 동시대를 살며 중국 사상계의 평형을 유지하게 했던 학자가 묵자지만 그를 기억하는 현대인은 거의 없다. 몇 년 전 안성기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중국영화 묵공에서 추상적으로 한번 다루긴 했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왜 이 시기에 묵자를 말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의 사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의 도덕과 학식을 정치에 틀을 맞춰갔지만 묵자는 노동자의 도를 말했다. 쉽게 구분하면 공자는 보수 묵자는 진보다. 그는 2500년 전에 반전평화운동과 절용문화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던 사람이다. 기세춘 선생은 그를 인류 최초의 진보주의 사상가이며 노동자의 시조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운동가들은 묵자를 읽지 않고는 진보를 말하지 말라고 한다.

묵자의 중심 사상은 인간애에 있다. 그는 항상 겸애(兼愛)를 말했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외쳤다. 그의 겸애는 기독교의 박애요 불교의 자비다. 문익환 목사는 석가와 묵자, 예수는 한 뿌리에서 난 가지라고 말했다.

묵자는 공자를 귀족계급에 빌붙어 출세나 하려는 한심한 자로 치부했다. 그에게 공자는 남의 창고로 배부르고 남의 밀밭으로 술 취하는 위선자였다. 모든 가치의 상위에 있던 왕권을 인민주권 밑에 두고 하늘은 인류를 평등하게 사랑하니 자기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그의 사상 중심인 겸애이며 전국시대 가장 많은 인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사후 380년 뒤에 태어난 예수는 하느님의 평등한 사랑을 말하지만 애()만 남고 겸()은 사라져버린다. 사랑과 같이 할 평등, 반전(反戰), 개혁, 노동이 없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왜 묵자를 읽어야 하는지 이유는 분명하다. 그의 사상에는 사람이 있고 사랑과 함께할 노동의 가치가 있다. 사전적 풀이로 그의 정치사상을 보면 세상에 이로운 것은 돋우고 해가 되는 곳은 제거한다는 흥리제해(興利除害), 능력을 우선으로 농민이나 공업자도 관리로 채용한다는 상현(尙賢), 노동력의 소비를 금지하는 절용(節用), 반전(反戰), 타인을 사랑하고 서로의 이익을 높이는 비공(非攻)과 겸애(兼愛)이다. 노동자 출신의 묵자는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었던 저층 민중들의 권위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평등주의자였다.

요즘 정치인들은 이러한 성인들의 도()를 버렸다. 특히 진행 중인 대통령 후보들의 인성자질은 최악이다. 자신의 능력을 상대를 공격함으로 채우고 거짓으로 과오를 덮으려한다. 묵자의 겸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으며 노동을 중시하는 절용도, 서로를 위한 비공(非攻)도 찾을 길이 없다. 좋은 정치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행이 어려울 뿐이다. 답은 묵자의 겸애이다. 노동자의 착취구조를 차단하고 지배자의 이익을 위한 전쟁을 반대하며 인류평등의 꿈을 실현하면 묵자의 사상은 현실에서 밝은 빛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2천 년을 지나 마르크스에게 계승되는 그의 사상을 단순한 이념논쟁으로 폄하하지 말고 사랑과 평등으로 승화하는 후보자를 기대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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