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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절벽의 앞에서
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2017년 05월 22일 (월) 10:42:02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대한민국에서 폐지줍는 노인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자원재활용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추산에 따르면 약 175만명이다. 이들이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50킬로그램을 모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4천원 정도. 한끼 밥값도 되지 않는 돈을 위해 노인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거리를 헤매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때로는 교통사고의 위험도 무릅쓴다. 일본의 빈곤퇴치운동가 후지타 다카노리는 소득원이 없고 저축은 불가능하며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처지에 놓인 빈곤 노인들을 하류노인이라고 명명했다. 모든 사회적 안전망을 상실한 하류노인들에게 노후는 공포다. 이들을 양산하는 구조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더 큰 사회적 손실로 귀결될 것이다.

세계 고령대국 일본에 뒤이어 한국도 노후붕괴가 임박했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1955년생들이 65세에 진입한다. 설사 은퇴 시기를 조금 늦춘다하더라도 700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노년기에 들어가는 시기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장기 저성장 국면에 있는 현 경제 상황에서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만큼의 근로소득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 조건은 노년기에 빈곤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후붕괴는 전 세대의 충격으로 나타난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하류노인의 상태로 전락하면 자녀세대의 경제적 부양 부담은 더 높아진다. 만성적인 경기 침체와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 가족에게 지워진 부양 부담의 증가는 부모와 자녀세대의 동반 파산을 가져온다. 노년기에 대한 리스크가 커질수록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는 경향도 늘어난다. 고령화 문제는 저출산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하류노인의 문제는 노인세대 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전방위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노인 부양으로 인한 젊은세대의 부담 증가는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경향은 노인을 사회에 불필요한 짐으로 여기며 그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가치관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를 당연시하는 태도는 노인에 이어 경제적 능력이 낮은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옛말은 틀렸다. 가난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가난은 사회안전망 미비와 불충분한 복지시스템이 만들어 낸 사회적 비극이다. 노인의 삶을 말해주는 각종 지표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OECD 평균(12.6%)4배에 달한다. 2014년 현재 노인자살률은 10만 명당 55명으로 전체 연령대보다 2배 많은 세계 1위다. 한국 노인들의 기대수명은 81.4세인데 반해 건강수명은 73세로, 평균 8년 이상 건강하지 못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노후에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사전예방과 사후관리 방안을 포괄하는 전방위적인 사회안전망 확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보장(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등 3대 복지제도의 결함을 뜯어고쳐야 한다.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빈곤노인을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을 정도로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가족 부양을 전제로 하는 기존의 사회복지모델은 국가의 책임과 사회적 돌봄을 강화하는 형태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이른바 '줬다 뺐는' 기초연금 문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문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문제 등은 노인빈곤 저지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부양의무제 폐지를 통한 복지사각지대 해소,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임기 초반 빠르게 공약 사항을 이행해 하류노인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하류노인을 양산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폐지 줍는 노인이 없는 나라야말로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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