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사회복지학박사

탄자니아 중학생 에라스토 음펨바(Erasto Mpemba)1963년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합니다. 요리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만들다가 뜨거운 채로 냉장고에 집어넣은 아이스크림이, 식혀서 집어넣은 것보다 더 빨리 얼어버린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늦게 얼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되는 현상이었습니다. 냉장고에 따뜻한 물을 넣어두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 상식과는 도대체 맞지 않는 일이지만 얼음을 얼릴 수 있는 냉장고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분명한 자연 현상입니다. 음펨바는 1969년에 그런 현상을 처음 물리학계에 알려준 탄자니아의 고등학생 이름입니다. 자연 현상에 학생의 이름이 붙여진 드문 경우인 셈입니다.

물론 펄펄 끓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것은 아닙니다. 섭씨 35도 정도의 따뜻한 물과 섭씨 5도 정도의 시원한 물을 비교해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물론 물을 담는 그릇의 재질이나 모양, 그리고 물의 양이 같아야 합니다. 음펨바 효과가 순수한 물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음펨바가 처음 관찰했듯이 설탕을 녹인 우유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음펨바 효과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생소한 현상입니다. 음펨바 효과를 소개한 교과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과학 상식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드물게 사실입니다. 사실 1963년에 교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실험을 하던 중에 우연히 관찰하게 된 현상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던 에라스토 음펨바가 최초의 발견자도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음펨바 효과를 알고 있었고, 그럴듯한 방법으로 설명도 했습니다. 어떤 성질이 주변의 성질과 반대가 되면 그 성질이 더욱 강화된다는 소위 `()주변성'(antiperitasis)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싹 마른 옷은 습한 곳에서 쉽게 축축해지고, 추운 겨울에 우물물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둥과 번개도 반주변성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설명이었지만요. 13세기의 철학자 로저 베이컨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17세기의 르네 데카르트도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음펨바 효과는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철학자들이 적어도 2000년 이상 이유를 알고 싶어했던 문제 중 하나였던 셈입니다. 다만 철학자들이 드러내놓고 논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는 자연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969년에 학술 논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음펨바 효과가 알려진 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음펨바 효과에 대한 현대 과학적 연구는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증발, 대류, 열전도 등 여러 가지 열역학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추정을 하고 있을 뿐 속 시원한 설명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에 녹아있는 질소나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 불순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험적으로 분명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음펨바 효과는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처럼 일상적인 현상이 사실은 이론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문제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예가 되고 있습니다. 액체의 물이 어디에서나 균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온도, 밀도, 열전도도를 비롯한 평균값을 이용한 방법으로는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물이 어는 것처럼 단순한 자연 현상에도 놀라운 수준의 복잡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현대 과학을 통해 얻는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음펨바 효과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있습니다. 음펨바에게 과학을 가르치던 교사는 음펨바의 관찰을 그저 `착각' 때문이었다고 하찮게 여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음펨바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자신의 학교를 찾아온 데니스 오스본이라는 물리학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이유를 물었던 끈기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꺽인 가을의 초입에 우리들 삶의 열정이 여름이라는 무더위에 더 열정적이었음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음펨바 현상처럼 뜨거워진 삶의 열정이 오히려 더 빨리 식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큰 목표를 달성한 후 안도와 안일의 마음으로 안주한다면 결국 그 삶의 열정이 식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일상에서 가졌던 변화와 회복에 대한 갈망,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민초들의 몸부림을 기억하고, 다시한번 삶의 가을에 풍성함을 위해 건강한 땀을 흘리고 정진해나갈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부흥 후 고갈이 아니라, 그 부흥을 끝까지 이어나가 2017년 하반기의 삶도 힘차게 감당하는 지역민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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