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국정원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국정원 적폐가 온 국민을 불신의 늪으로 빠뜨리고 언론은 풍년을 만났다. 국정원의 행태를 정말 온 국민이 모르고 속았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알만한 사람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그들의 적폐다. 정부는 정권유지를 위해 부추겼고 야당은 들춰낼 힘과 의지가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은 방법이 없었다. 댓글녀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문제라는 큰 테마를 벗어나 감금사건으로 몰아버렸고 수장 원세훈의 1심에선 정치개입이 맞지만 대선개입은 아니다.”라는 법리로 스스로 신뢰와 명예를 버렸다. 여기에 파기환송심의 김시철 재판장 ‘17개월 시간 끌기작전은 사법부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수장했다.

검찰은 총장 채동욱을 혼외자 문제로 몰아내고 수사팀은 공중분해 시켰으며 윤석렬 검사는 보고 절차를 문제 삼아 정직처분을 내려 내몰아버렸다. 이른바 국정원 감싸기가 본격적이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야당은 침묵했고 언론은 오히려 장단을 맞추고 틀린 박자는 추슬러 주는 기이함을 보였다. 이러한 정의의 모순은 온 국민의 촛불을 불렀고 정권을 바꿨다. 권력욕이라는 작은 수건으로 하늘이라는 민심을 가리지 못한다는 것은 전해 내려오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가 만장일치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유죄 원심을 깨버리자 오히려 법조계에서 비판이 일었다. 소위 대법원의 전원합의체에서 원심을 파기하는데 13:0이라는 만장일치는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새로운 판례를 제시하거나 판례의 법리를 변경하는 등의 극히 예외적인 사항이 아니면 전합으로 가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당시 의견이었다. 이른바 정권의 시녀로서 눈치 보기의 전형인 셈이다. 전합 이전에 이뤄지는 대법관 4명의 예비심사인 소부에서 반대 의견이 있을 시에만 열리는 전합에서 반대 없이 13:0이라니 당연한 비판이다. 이렇게 양승태 원장은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만들어주었고 국가는 온통 국정논란으로 치달았다.

당시 김진동 부장판사는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의 판결이라 꼬집은 결과 정직 2개월 처분의 과한 징계를 받았다.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도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법무부와 사법부의 합작으로 이뤄진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하지만 권불십년이다.

지난 30일 법원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국정원 민간인 댓글 공작 역시 수사가 탄력을 받고 있다는 보도다. 댓글녀의 감금사건이 아닌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으로 본 가닥을 잡은 것이다. 원세훈 전 원장도 추가 수사를 피하긴 어렵다. 6월에 꾸려진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는 이미 입법 사법 행정부를 향한 광범위한 여론 조작을 확인했다. 민간인 팀장들도 공직선거법 위반을 적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의 시작은 정권유지였지만 결과는 국가를 위기로 빠뜨린 국정농단이었다. 결코 용서가 힘든 사람들이다. 특히 사법부의 부끄러운 민낯은 국민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다. 사법부는 독립기관이 아니었다. 청와대의 부속기관이었다.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던 이들의 발언이 재판관들에겐 무의미할 뿐이다.

최근 확보한 여러 증거들은 원세훈에게 직권남용과 횡령 등의 추가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와대를 위한 이들의 행위가 청와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일이 관건이다. 원세훈이 충성한 윗선은 누구였을까.

국정원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사건들의 숨은 그림자 역할은 바로 언론이었다. 그래서 함께 떠오른 이슈가 해직 언론인들의 복귀와 방송사들의 불법 노조탄압, 방송거부, 제작거부 등이다. MBC170일 파업과 노조 참패 이후 다시 재개되는 제작거부 사태는 참아왔던 분노지만 전 정권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비겁함이다. 이제 받아줄 정권이 들어섰다는 그들의 유권해석에 따른 행동이다. 그래서 언론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당시 국정원 선거개입사건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스스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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