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가을에만 책을 읽으라는 뜻은 아니고 여건이 좋다는 말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적성을 살피며 흔하게 했던 취미 질문의 체크 박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항목이 독서와 음악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독서와 음악을 취미 체크 난에 넣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여기에 체크를 했던 학생이나 직장인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육신의 양식은 음식이요 마음의 양식은 독서라고 상식을 자랑하지만 정작 독서와 음악은 취미로 인식을 하고 있다. 조금은 고상해지기 위해서지만 오히려 자신의 저급함을 알렸을 뿐이다. 결코 독서와 음악은 취미가 아니다. 그대로 우리의 일상이다. 독서가 취미라면 밥도 취미로 먹어야 한다. 독서는 정신의 자양이지 이따금 관심을 갖는 취미가 아니다. 음악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어찌 음악을 모르고 인간의 정서를 논할까. 사서삼경에서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이요 오경은 여기에 춘추와 예기를 더한다. 예기(禮記)의 악기(樂記)편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공자는 예로 일어서고 악으로 완성한다고 했다. 그래서 예와 악은따로가 될 수 없고 독서와 음악은 다르면서 하나다.

요즘 정치계는 그야말로 무뢰배들의 세상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벌도 아니고 학벌도 아니다. 출세의 도구로 사용된 시험의 기술에는 밥상머리 교육이 없었고 따라서 배운데가 없었다. 아버지 교육이 없으면 어머니에게, 그마저 없으면 선생님에게라도 배워야 하지만 요즘은 배운데없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분별력도 잃었다. 오직 나만 옳다. 카메라에 한번이라도 더 잡히기 위해 악을 쓰고 반말을 하고 삿대질을 해댄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라면 우리나라 정치인과 재벌 가족들은 책과는 친하지 않다. 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學而時習之不亦說乎)보다는 무지한 권력의 달콤함이 훨씬 친숙하다. 배운데 없는 자들의 부모와 스승이 궁금하다. 국정 질서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온갖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수사의 칼날을 정치보복이라는 자신들의 주특기로 물타기 하고 국정농단의 주역인 전직 대통령은 법치를 부정하고 있다. 파렴치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도저히 이해불가지만 자신들은 갈 길을 가고 있다.

우리 국민의 교육열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물론 결과까지 같지는 않지만 수험생들의 학습 시간과 학부형의 열의는 대단하다. 이른바 시험 기계를 만드는 노력이다. 등수에 맞춰 줄을 세우고 어디를 들어가든 이 순서는 유효하다. 옆의 친구를 이기지 못하면 인생은 바로 낙오자가 된다. 단지 시험만으로 결정이 되는 미래에는 특별한 바람도 꿈도 없으며, 여기에 독서가 뚫고 들어갈 자리는 바늘구멍만큼도 없다. 이들의 미래는 현재 기득권자들의 모습이다. 무슨 예가 있고 악이 들었겠는가. 문벌과 학벌, 등수 경쟁은 몰염치한 권력자를 만들고 독서와 음악은 풍요로운 인생을 만든다. 선택은 자유지만 메마른 권력은 결국 비참한 이름만 남긴다. 권력과 명예는 어둠과 결탁해 치욕을 생산한다. 적어도 예와 악을 무시한 현실에서 이러한 공식은 들어맞는다.

지금이라도 가을이라는 계절을 핑계 삼아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자. 그리고 자신도 녹슨 머리에 독서라는 윤활유를 부어보자. 돈은 쓰지 않으면 숫자에 불과하고 명예는 만인의 독한 혀에서 얻는다. 하지만 책은 부를 무력화하고 명예의 멍에를 내려놓게 한다. 예와 악은 책에서 나오고 사람을 일으켜 완성시킨다. 독서를 멀리하고 출세의 지식만을 편식한 무리들을 지겹게 겪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강요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책은 인간에게 길을 제시하고 풍요로운 삶을 준다. 또한 인품을 무겁게 하고 신중하게 만든다. 세상을 보는 눈을 주고 겸손을 준다. 여기서 덤으로 얻는 것이 지식이지만 휘두르지 않는 칼이다. 공부란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단지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내면의 즐거움일 뿐이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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