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죽음(7)-자연사(증자)

증자(曾子, 기원전 504~436)는 중국 노나라 남무성에서 증석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아버지를 따라 공자의 문하에 들어갔다. 제자들 가운데 가장 어린 그를 공자는 특별히 귀여워하였다. 공자가 그를 귀여워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증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하였을 뿐 아니라 특히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증자가 어렸을 적 한번은 참외밭을 매고 있는 아버지 곁을 지나다가 참외줄기를 상하게 만들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작대기로 그를 때려 그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후 증자가 의원의 치료로 깨어났다. 증자는 깨어나자마자 고통을 무릅쓰고 일어나 아버지에게 가서는, “저에게 교훈을 주시느라 손이 몹시 아프셨겠습니다. 근심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빌었다.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거문고를 뜯으며 명랑하게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칭찬했다고 한다.

한번은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따라가려고 치맛자락에 매달려 울며 보챘다. 시달리다 못한 아내가 아이를 달랬다. “얘야. 얼른 들어가거라. 엄마가 돌아올 때 돼지를 잡아줄 게.” 그제야 아이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니, 증자가 돼지를 묶어놓고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들고 막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내는 놀라 급히 뛰어들어,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 미쳤어요? 아이를 조금 속인 걸 가지고.” 이때 증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어떻게 아이를 속일 수 있단 말이요? 아이들이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부모만 보고 배우는 것이오. 지금 당신이 아이를 속이는 것은 장차 아이에게 남을 속이도록 가르치는 것이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속이면, 아이는 어머니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오. 그러면 무슨 가정교육이 되겠소?” 말을 마친 증자는 돼지의 멱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내를 내쫓고 말았다. 그 이유인즉 아버지께서 삶은 배를 좋아하셨는데, 그 아내가 배를 잘못 삶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증자는 끼니때마다 아버지 밥상에 술과 고기를 올렸다. 다 먹고 난 뒤에 아버지가 그 음식이 더 남아 있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 더 남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중에 증자의 아들 원()도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식사 때마다 아버지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였다. 그런데 증자가 술과 고기가 남아 있느냐?”고 물으면, 항상 없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증자가 아버지의 뜻을 미리 헤아려 받들었던 데 반하여, 원은 아버지를 형식적으로 봉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평소의 그답게 증자는 죽음에 임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손과 발을 펴보아라.” 그리하여 자기의 몸에 아무런 손상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매우 기뻐하면서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나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뚱이와 머리털, 피부를 손상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곧 죽을 것이니 그 걱정은 덜게 되었다.”

위 내용과 관련하여,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있다. , ‘몸이나 머리카락, 피부, 곧 몸뚱이의 전체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증자의 효() 사상은 오늘날까지 동양윤리의 핵심이 되어왔던 바, 그는 공자의 수제자로서 스승의 사상을 독창적으로 체계화하여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에게 전수하였다. 그리고 자사는 다시 맹자에게 연결함으로써 정통 유학을 확립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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