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윤/ 서울 송파구 잠실본동, 영광읍 남천리

'오늘도 강물에/ 띄웠어요/ 쓰기는 했건만/ 부칠 곳 없어/ 흐르는 물위에/ 던졌어요'

수필가 피천득의 편지라는 시입니다.

편지라는 단어는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편지 쓰는 사람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인터넷이나 휴대폰의 영향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정서가 메말라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편지는 사람 간의 따뜻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3차원 통신입니다.

가을빛 가득한 창가에 앉아 이성에게 가슴 두근거리며 쓰던 연애편지, 군대 간 남자 친구를 생각하며 밤을 하얗게 새워 쓰고 또 쓰던 편지, 수험생인 딸의 도시락에 매일 넣어주던 엄마의 사랑편지, 첫 월급을 탄 기쁨에 부모님께 드리는 빨간 내복 상자 속에 곱게 접어 넣은 효도편지 등에는 요즘의 휴대폰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정성이 있습니다.

시월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부모님께, 선생님께, 자녀에게, 부부끼리, 그리고 고마운 지인들에게 편지를 씁시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만 담아두면 그 빛이 바랍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이번주 말에는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편지를 씁시다.

평범한 인간의 삶 속에서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은 전문적인 작가가 쓰는 글이지만 편지는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게다가 편지는 책처럼 독자(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쓴다는 게 만만한 작업(?)은 아닙니다. 특히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쓴다는 것은 요즘에는 드물기까지 합니다. 휴대폰이 대중화됐고,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간편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메시지나 SNS를 통하면 몇 초 만에 해결되는 세상입니다. 집배원이 배달하는 우편물을 보더라도 손으로 쓴 편지는 찾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큰 탓도 있습니다. 펜을 들고 첫 글자를 쓰는 데만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문자메시지나 SNS와 달리 맞춤법이나 글의 흐름이 어색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좋은 말을 꾸며 쓴다고 해서 좋은 편지는 아닙니다. 편지는 꾸미는 데서 시들고 진실한 데서 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솔하지 않은 편지는 감동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미사여구가 즐비하면 글만 번지르르하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가을이 시작됐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누구나 누군가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리움을 전하는 데는 편지만한 게 없습니다. 시조시인인 문무학씨가 우체통을 보면 소식이 궁금하고 써놓은 편지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고 했듯이 우체통은 그리움의 집이고 편지는 만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먹지만 그것을 마음먹은 대로 하기는 어렵다는 말일 것입니다. 손으로 편지를 써본 게 언제였는지, 받아본 것은 또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한 시대입니다. 그리운 사람이 더 그리워지는 계절, 하얀 밭에 검은 씨를 뿌리듯 한통의 편지를 씁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내가 아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한다는 칭찬 한마디씩 준비해 둡시다.

이 가을에는 뜻을 함께하는 이웃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반갑게 만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담아 편지를 씁시다. 아름다운 이 계절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잘한다고 칭찬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거듭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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